영화 보는 중(122)
-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후기: 제로 사이다 복수극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Promising young woman). 의대생이었던 캐시(캐리 멀리건 분)는 학교를 자퇴하고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7년 전 그녀의 절친한 친구 '니나'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힘이 못됐다는 자책감에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해자들은 밝은 하늘 아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캐시는 그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1, 2 등의 복수극은 보통 선홍빛 피로 점철된 영상으로 다루곤 한다. 사법권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적 복수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기까지 한다. 폭력을 섞은 액션과 잔혹한 고어물까지 얹는 경우도 다반사다. 영화 '프라..
2021.04.25 -
넷플릭스 영화 '맹크' 후기: 오르간을 연주하던 원숭이가 돈키호테로 변모하기까지
할리우드의 황금기(1930~194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변성기이자,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이 확립되어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민 케인', '오즈의 마법사' 등의 명작이 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 '맹크'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시민 케인'의 제작의 뒷이야기를 다루면서 당대 의상, 세트는 물론 햇살과 공기까지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재현해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2020년에 제작된 영화인지, 1930년대에 제작된 영화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 영화 '시민 케인', 오슨 웰스 감독, MGM(사자가 어흥하며 시원하게 울어주는 오프닝으로 유명한 영화사),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허스트 커뮤니케이션즈(ESPN, 에스콰이어, 마리끌레르 등의 매체 보유)의 창업주]등에 대한 사..
2021.04.24 -
영화 '더 파더' 후기: 걸어 다니는 혼돈 그 자체
내가 오롯이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것들이 주변에서 자꾸 틀렸다고 한다. '노망 났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아 맞아, 그랬지. 기억난다..'라고 얼버무리기 일쑤. 영화 '더 파더'의 앤서니(앤서니 홉킨스 분)는 기억의 혼돈의 한 복판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버둥 치지만, 모든 게 아스러지고 만다. 치매를 앓는 노인을 돌보는 주변인과 그 고생을 다뤘던 그간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더 파더'는 관객들을 혼돈의 미로 속으로 같이 끌고 가서, 앤서니가 보고 듣는 입장에서 같이 느끼게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게 맞는지, 그동안 믿고 있었던 게 거짓이라고 하는 주변인들 때문에 앤서니와 같이 미칠 지경. 어떻게든 기억의 흔적을 좇으려는 앤서니를 연기하는 앤서니 홉킨스 경의 절륜의 연기 신공은 명불허전. 아카데미 여..
2021.04.23 -
넷플릭스 영화 '러브 앤 몬스터스' 후기: 제목에 충실한 킬링 타임용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물을 보면, 문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망하게 돼있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길 바라는 것 같다. 어느 날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을 발견한다. 지구에 충돌전 미사일로 격추한 것 까진 괜찮았지만, 그 소행성의 파편 속에 있던 무언가에 의해, 포유류를 제외한 곤충, 양서류 등의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했다. 그 덕에 크기가 매우 커지고 최상위 포식자가 됐으며, 인류의 95%는 잡아먹히거나 죽게 된다. 남은 5%의 인류는 지구의 지배자가 돼버린 괴생명체를 피해 벙커 등의 시설로 대피해 숨죽여 사는 세상이 오고 만다. 그런 암흑 같은 세상 속에서 지낸 지 어느덧 7년. 조엘(딜런 오브라이언 분)은 7년 전 사태 이후 못 만나게 된 여자 친구 에이미(제시카 헨윅 분)와 무선 라디오를 통해 ..
2021.04.22 -
영화 '노매드랜드' 후기: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곧 집임을
노매드. 유목민을 뜻하는 말. 정착해서 집을 짓고 살림을 꾸리는 정주민이 아닌, 매번 터전을 찾아 떠도는 게 유목민의 삶이다. 21세기 미국에서 밴하나 끌고 다니며 먹고 자고 하는 '노매드 캠퍼'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98년 IMF 이후 급격히 증가된 노숙자들과 비슷한 양상. 영화 '노매드 랜드'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노매드족들을 어떠한 가치판단 없이 조용히 관조한다. 하늘을 지붕 삼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캠핑족들의 낭만은 배제했다. 인생의 패배자로 낙인찍고 계도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되려 인생을 같이 살아가는 또 다른 주체로서 바라보는 감독의 따스한 시선이 화면 너머로 전달된다. '파고', '쓰리 빌보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프란시스 맥..
2021.04.21 -
티빙 영화 '서복' 후기: 왜 사냐건 웃지요
영화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이 SF 영화 '서복'을 들고 오랜만에 돌아왔다. '서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영화. 인류 영생의 비밀을 간직한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 죽음을 앞두고 있는 전 국정원 요원 민기현(공유 분). 장르영화는 일정한 법칙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특성상 다른 영화들이 계속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타카', 'A.I', '블레이드 러너', '얼터드 카본' 등. 수십 년간 SF 장르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던 현학적 질문들이 '서복'에서도 유지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삶,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작중 서복의 입을 통해서 '왜'라는 단어로만 존재론적 질문을 얄팍하..
2021.04.18 -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후기: 쉽게 극복되지 않는 상처도 있음을
힐링. 상처 아물듯 모든 걸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 TV 프로그램, 자기 계발서들은 무수히 많다. 볼 때는 괜찮지만 돌아서면 머릿속에서 쉽게 사그라든다. 적당히 따뜻한 말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거짓 위로는 아니었을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어설픈 힐링을 제시하는 게 아닌, 누구나 마음속에 쉽게 극복되지 않는 상처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다. 형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리 챈들러(케시 애플렉 분)'. 형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수년간 외면해온 고향 '맨체스터'로 향한다. 홀로 남겨진 조카 '패트릭(루카스 해지스 분)'의 후견인이 되어 성년이 될 때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 리는 패트릭에게 보스턴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조카는 그동안 살았던 맨체스터를 떠날 수 없다며 반..
2021.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