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중(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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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영화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후기: 사랑의 시공간, 홍콩
90년대 홍콩 반환을 앞둔 시대의 우울감을 탁월한 영상미로 표현했던 왕가위 감독. 코로나 블루 시대에 개봉 연기작들의 빈자리를 재개봉작들이 채우며 각광받고 있다. 왕가위 감독의 최근 재개봉작 '화양연화'는 박스오피스 2위, 10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 그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영화 '중경삼림'이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돌아왔다. 왕가위 감독은 '동사서독'을 찍으면서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았는데(한없이 늘어지는 영화 작업방식에 기인한 스스로의 잘못이기도 하다), 중경삼림을 가벼운 마음으로 찍으면서 나아졌다고 한다. 그 덕에 중경삼림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왕가위스럽지 않은 영화가 됐다. 그의 영화 '타락천사'는 본래 중경삼림의 3부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였으나 1, 2부 만으로 러닝타임이 10..
2021.03.06 -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후기: 용과 같이 잃어버린 믿음을 찾아서
디즈니가 동남아시아 배경에 우리에게 친숙한 '용'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하 라야..)'을 들고 왔다. 디즈니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은 쏙 빼고, 그 빈자리를 화려한 액션 활극으로 꽉꽉 채워 넣었다. 용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동남아시아의 왕국 '쿠만드라'. 모든 생명을 석화로 만드는 '드룬'에 맞서 인간을 지키기 위해 '드래곤 젬'을 남기고 희생한 용들. 500년의 시간이 지나고 인간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5개의 왕국으로 분열된다. 인간들의 탐욕으로 드래곤 젬이 파괴되고 드룬이 다시 부활한다. 폐허가 된 쿠만드라 왕국을 구하기 위해 '라야'는 마지막 용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답게 이번 '라야...'에서도 디즈니가 디즈니 했다. 그래픽은 동급 ..
2021.03.04 -
영화 '미나리' 후기: '우리 가족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는 '미나리'. 한국계 미국인 아이작 정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감독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관객상, 각종 미국 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 각본상 등을 휩쓸며 최근에는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까지 수상하였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건너간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왔으나, 원대한 꿈을 이루겠다며 아칸소로 건너가 농장을 일궈보기로 한다. 아이들을 맡길만한 데가 없어 모니카의 친정 엄마(윤여정 분)가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별 다른 게 없다. 맞벌이 부부라면 쉽게 공감이 갈만한 육아의 문제..
2021.03.03 -
몬스터버스 영화 '고질라(2014)' 후기: 지구방위대 고씨의 활약
'갓'질라('God'zilla),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류를 보잘것없게 만드는 존재.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들에게 무능함을 일깨워주고, 재앙 그 자체로서 두려움을 심어주는 존재. 그래서 영어명이 고(Go)질라가 아닌 갓(God)질라로 돼있는 대괴수. 고질라 탄생 60주년 기념작이자, 할리우드에서 야심 차게 제작한 몬스터 버스의 첫 작품인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고질라(2014)'는 일본 고지라의 오마주 작품이다. 특촬물에서 시작한 일본 고지라. 지진,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반영한 고질라 시리즈를 1954년부터 제작해왔다. 일본의 고지라는 고대부터 잠들어있던 신의 영역에 가까운 존재이며, 인간의 핵 실험으로 깨어나 인류를 심판한다는 내용이 주이다. 나이가..
2021.03.01 -
이와이 슌지 영화 '라스트 레터' 후기: 그 여름의 '러브레터'
그에게 닿지 못한 마지막 편지,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흡사 계절별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들을 모으는 것 같다. '4월 이야기'의 봄, '러브레터'의 겨울, 그리고 청아한 신록의 푸른 여름의 '라스트 레터'. (이제 이와이 월드의 가을만 나오면 4계절이 다 모이지 않을까 싶다) 죽은 언니의 동창회에 대신 가게 된 '유리(마츠 다카코 분)', 그곳에서 20년 만에 만나게 된 첫사랑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 편지를 주고받으며 죽은 언니에 대한 추억과 전하지 못한 '라스트 레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놉시스만 보면 불륜 로맨스가 떠오를 수 있겠지만, 이와이 슌지는 그런 가능성을 바로 차단해버린다. 홋카이도의 추운 겨울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그의 전작 '러브레터..
2021.02.25 -
영화 '카오스 워킹' 후기: 시리즈의 애매한 서막
카오스 워킹, 걸어 다니는 혼돈 그 자체.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고,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모든 사람들이 상시 거짓말탐지기를 당하는 것처럼 속마음이 다 드러난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산다면, 그곳은 영화의 제목처럼 '카오스 워킹'이 되고 만다. 새로운 행성 '뉴월드'에 정착해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을에 여자는 없고 오직 남자들만 산다. 그곳에 불시착하게 된 '바이올라(데이지 리들리 분)'. 그녀를 쫓는 마을의 시장 '데이비드(매즈 미켈슨 분). 그리고 그녀를 도와주는 '토드 (톰 홀랜드 분)'. 데이비드를 필두로 하는 마을의 세력과 그들로부터 도망가는 바이올라와 토드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페트렉 네스의 SF소설 '카오스 워킹'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황폐화된 도시가 주로 나오던 일반적..
2021.02.24 -
이와이 슌지 영화 '하나와 앨리스' 후기: 소녀들의 귀여운 거짓말
*개봉한 지 17년이 된 영화임을 감안해서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다양한 영화적 소재들 중에서 '사춘기' 만큼 많이 다뤄지는 것도 없을 거다. 이와이 슌지에게 10대 청소년기란 반항과 학교폭력의 시기이자(예: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다신 없을 청춘의 아름다운 시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와이 슌지가 배우들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포착해서 스크린에 담은 영화 '하나와 앨리스' 다. 10대 청소년의 왕따, 학교폭력을 가혹할 정도로 가슴 아프게, 하지만 그들을 비추는 화면은 이쁘게 그린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아오이 유우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와이 슌지는 아오이 유우에게서 그 나이 때 소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함을 포착했던 것 같다. 그녀를 데리고..
202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