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5. 19:12ㆍ영화 보는 중
그에게 닿지 못한 마지막 편지,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흡사 계절별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들을 모으는 것 같다. '4월 이야기'의 봄, '러브레터'의 겨울, 그리고 청아한 신록의 푸른 여름의 '라스트 레터'. (이제 이와이 월드의 가을만 나오면 4계절이 다 모이지 않을까 싶다)
죽은 언니의 동창회에 대신 가게 된 '유리(마츠 다카코 분)', 그곳에서 20년 만에 만나게 된 첫사랑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 편지를 주고받으며 죽은 언니에 대한 추억과 전하지 못한 '라스트 레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놉시스만 보면 불륜 로맨스가 떠오를 수 있겠지만, 이와이 슌지는 그런 가능성을 바로 차단해버린다.
홋카이도의 추운 겨울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그의 전작 '러브레터'. 정혼자의 2주기 추도식으로 시작해, 죽은 이를 못 잊어 그의 옛 주소로 편지를 부치고, 기대치 않던 답장이 오면서 영화가 시작됐었다. '라스트 레터'도 죽은 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대신 요란스러운 매미소리가 가득한 무더운 여름날의 풍경이 펼쳐진다. 상술한 시놉시스의 언니 행세는 얼마 안가 바로 밝혀진다. 유리는 그녀를 잊지 못해 평생 그리워하는 쿄시로를 이야기의 흐름으로 끌어들이는 소개자 역할을 하는데 그친다. 쿄시로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첫사랑의 흔적을 하나씩 밟아간다.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는 '죽은 이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잊지 않고 계속 언급하는 것'.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죽은 그녀를 추모한다. 그리고 그녀를 더 빨리 찾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이와이 슌지 사단이라고 할만한 배우들도 대거 등장한다. '4월 이야기'의 마츠 다카코,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 에반게리온 팬이라면 반가워할 안노 히데아키 감독도 이와이 슌지와의 친분으로 출연한다. 카메오로 그칠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대사량이 많다. 1인 2역을 소화한 히로세 스즈와 모리 나나의 연기도 인상 깊다. 특히 모리 나나 배우의 짝사랑하는 소녀 감성의 연기가 섬세하다. 영화 속 가장 중요한 감정선을 맡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연기 역시 과하지 않으면서 슬픈 정서를 잘 표현했다. 스토리를 간단히 하고 특유의 감성에 집중했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라스트 레터는 등장인물도 많이 나오고 스토리도 꽤 꼬아놓은 편이다. 영화가 다루는 주요 소재가 '편지'라는 점, 비슷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 '러브레터'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배급사에서도 사실상 러브레터의 감성을 잇는 작품인양 홍보 하지만, 사실 그것만 못하다. 다만 외롭게 첫사랑의 추억을 곱씹으며 힘든 삶을 마지막까지 견뎌냈을 어느 여인의 처연했던 삶이 애달프긴 하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이와이 슌지 영화 | ||||
추천 포인트 | 이와이 슌지 영화의 팬인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화이트 이와이 영화의 감성을 기대하는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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