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31. 00:10ㆍ영화 보는 중
좀비 영화 촬영 중에 실제 좀비가 나타난다는 독특한 스토리의 영화를 넷플릭스 통해 시청했다.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이하 카메라!)'이다.
일본에서 만든 좀비 영화인 줄 알고 틀었지만, 처음 받은 인상은 독립영화 느낌의 핸드헬드 영화였다. 영화 찍는 과정을 영화로 담은 극형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롱테이크 영화다. 롱테이크란 장면의 전환, 편집 없이 한 컷으로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을 말한다. 고도의 촬영 기술, 감독의 노하우, 배우들과의 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롱테이크를 구현하기 힘들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흐름을 끊김 없이 따라가기 때문에 그 내용의 전달에 효과적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가 롱테이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영화 전체가 롱테이크 형식을 취하는 '1917'이 대표적인 예이다.
영화 '카메라!'는 상술한 할리우드 뺨칠 정도의 롱테이크지만, 그 퀄리티는 좀 많이 다르다. 적당히 몇 컷 정도만 롱테이크려니 했는데 영화 한 편 자체를 통째로 하려는 기세다. 이런 촬영기법은 생생한 현장감을 안겨주지만, 스테디캠으로 하지 않으면 보는 이로 하여금 어지러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필자는 3D 멀미가 심해 영화 튼 지 20분 만에 토할 것 같았다. 영화 러닝타임이 95분인데 남은 75분이 이 상태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참다 참다 꺼버렸다. 그리고 평이나 찾아보려는 생각에 구글링을 했다. 다행히 상술한 롱테이크 100% 핸드헬드는 37분이면 끝난다는 소식에 더 버텨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상할 정도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일색인 이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던 게 가장 컸다. B급 좀비 영화가 전부인 것 같은 이 영화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인생에서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몇 편 안 되는 영화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하기의 포스팅을 보지 않는 걸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이 극 중 극을 유심히 보면 '그저 B급 영화라서 이상한 부분이 많다', '왜 저렇게 찍었을까', '영화 참 별로네', '수준이 좀 많이 낮네' 등등의 혹평을 계속할 정도로 카메라 워크도, 배우의 연기도, 뜬금없이 카메라에 등장하는 감독, 옥에 티가 펼쳐지는 엑스트라의 연기도 눈에 띈다. 그리고 37분간 펼쳐졌던 극 중 극인 'ONE CUT OF THE DEAD(이하 원컷)'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원컷'은 끝이 난다.
그리고 영화는 '원컷'을 촬영하기 한 달 전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핸드헬드도 아니고, 이상한 B급 영화가 아닌,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일본 영화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원컷'을 만들게 되는 사연들이 펼쳐진다. 방송사의 어처구니없는 요구 때문에 이 영화는 만들어진다. [좀비 영화+원 컷+생방송]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드디어 영화의 본 촬영이자 생방송의 날이 다가왔다. 전반부 37분의 단편영화를 유심히 본 사람들에게만 펼쳐지는 대환장 코믹쇼가 펼쳐진다. 이상하게 튀는 장면들, 납득이 안 되는 장면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웃음을 참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생방송 특성상 상황에 대처하는 감독과 배우들의 순발력에 탄식을 하게 된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촬영 현장의 상황도 보여준다. 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방송만 잘되면 된다는 스폰서 측의 프로듀서와 배우들 개개인의 요구사항을 맞춰줘야 하는 감독의 고뇌. 그 와중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책임감, 그리고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타이밍을 맞춰가며 피를 뿌리기 위해 분주하게 뛰는 스태프들까지.
새삼 '원컷' 영화를 욕했던 1시간 전의 내 모습과 그간 봐왔던 다른 영화들도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영화 한 편에 이렇게 많은 스태프들의 고생과 (저예산 단편인데도 꽤 많은 스태프들이 나온다) 영화 더럽게 못 만든다 라고 욕했던 나 자신이 새삼 부끄러워지면서 반성하게 된다. 영화란 협력으로 이루어진 산업이고, 영화 한 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겨 있었다는 것을 되새겨 보게 된다.
'카메라!'의 제작비는 300만 엔. 일본 내에서 처음에 2 개관에서 시작했으나 재밌다는 입소문이 퍼져 350 개관까지 늘었으며 영화의 총 흥행 수익은 30억 엔, 제작비의 1000배를 벌었다. 연기레슨 받던 배우들과의 워크숍의 형식으로 만들어서 출연료도 거의 없으며, 좀비 출몰지로 보이는 공장도 지자체에서 무료로 대여해준 곳이다. 극 중 감독의 가정집으로 나오는 곳은 실제 영화감독의 집이고, 출연하는 갓난아기는 실제 감독의 아이이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갈라파고스화 되고 있는 일본 영화 산업 속에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돌파한 '카메라!'의 저력에 새삼 놀라웠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 그 자체에 대한 마음과 열정을 다시 한번 깨우쳐줬다. 영화를 위한 영화,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바치는 헌사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현재 왓챠,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에서 볼 수 있다. '카메라!'를 재밌게 봤다면 스핀오프작(사실상 속편)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2019)'과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리모트 대작전!(2020)'도 관람하는 걸 추천한다. 스핀오프는 티빙에서, 리모트 대작전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기발한 아이이디어가 빛나는 영화 찍는 영화 | ||||
추천 포인트 | 영화 그 자체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좀비영화를 기대한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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