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다' 후기: 좀비라는 환경에 대처하는 생존기

2021. 2. 8. 01:13영화 보는 중

K좀비의 계보를 잇는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 완주했다.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 1위까지 했다는 영화 '#살아있다'이다.

㈜안다미로, 영화'얼론' 스틸컷

영화 '#살아있다' 2020년 6월 개봉작이다. 개봉 당시에 코로나 팬데믹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등의 선방을 했지만, 영화 스토리 구성에 대한 혹평세례로 흥행이 다소 주춤했었고, 최종 관객수 190만 명 정도로 마무리된 영화다. '#살아있다'는 'Alone(얼론)'이라는 미국 영화의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 원작이기 때문에 한국판의 개봉일이 더 빠르다. '얼론'은 IMDB 4.8/10에 빛나는 혹평의 영화다. 한국판도 혹평 일색인데 더 별로라는 원작을 굳이 찾아보는 걸 비추한다. 필자 역시 보지 않았다.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고 있는 '준우(유아인)'는 TV를 켜보라는 채팅창의 내용과, 아파트 밖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대규모 좀비 사태가 발발한 것이다. 가족들이 걱정되지만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고, 현관문 밖 복도에는 좀비들이 돌아다닌다. 순식간에 준우는 집에 고립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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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살아있다'가 내세우는 차별점은 제목에서 보이는 해시태그 등의 SNS와 IT의 반영이다. 준우는 게임을 하면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으며, 이따금씩 그의 생존 기록을 영상으로 남겨놓고, 남들 다하는 인스타그램의 생존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주변 상황을 보기 위해 VR고글을 쓰고 드론을 날리며, 안 터지는 전화의 주파수를 위해 귀에는 갤럭시 버즈를 꽂고 드론에 핸드폰 고정한 채로 띄워 통화를 시도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소재가 '좀비' 이기 때문에 좀비 영화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정체성은 고립무원의 생존기에 가깝다. 그래서 좀비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면 실망이 가득할 수 있다. 좀비는 준우를 고립시키는 환경설정에 불과하다. TV에는 무의미한 내용의 같은 뉴스만 나오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소식은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좀비를 어떻게 해치울 건지에 대한 고민보다, 연락이 안 되는 가족들의 안부와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식량과 식수에 대해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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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식량은 떨어져 가고 비가 오면 냄비를 놓고 빗물을 받아야 하는 무인도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준우는 자살을 시도한다.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인 '살아남아야 한다'의 약속을 지켜보려 했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그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가 죽으려 하는 순간 맞은편 아파트에서 그를 지켜보던 유빈(박신혜)'이 레이저 포인트로 그의 죽음을 만류하고, 그녀와 소통을 다시 하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가져보려 한다. 

 

사람들이 혹평세례를 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중 첫 번째는 유빈의 좀비 무쌍이고 두 번째는 8층의 시퀀스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유빈은 등산용 로프로 4~5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멋지게 활강한 다음 지상의 좀비들을 등반용 손도끼로 무찌른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의 서이경(이시영)처럼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사전에 있었다면 관객들이 그렇게까지 당혹스러워 하진 않았을 거다. 서이경은 특전사 출신의 현역 소방관이기에 괴물과의 혈투에 대해 납득하지만, 유빈은 그저 씩씩해 보이는 여성에 불과하다. 그래서 관객들은 '주인공만 골라서 물지 않는 편식 좀비'라며 캐릭터를 희화화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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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그런데 또 유빈과 준우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그들의 식량은 이미 고갈돼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 처해있어 둘 다 자살시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8층의 아파트로 가서 더 살아보자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좀비 떼들 사이를 질주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에라 모르겠다' 방식이다. 원래 좀비와의 싸움 같은 고대 방식의 전투는 병사들의 사기가 좌우한다. 유빈과 준우의 사기가 충천해 있다면, 그들의 절박함에 대한 감정이입을 한 상태라면 그렇게 까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명색에 '좀비 영화'이기 때문에 좀비와의 혈투 씬이라는 클리셰를 억지로 집어넣은 것 같다. 클리셰를 안 넣으면 안 넣었다고 욕먹었을 테고, 넣었으면 사전에 캐릭터 묘사를 신경 썼어야 했을 텐데 섬세함이 떨어지는 연출에 아쉬움이 크다.

 

힘들게 다다른 8층에서의 시퀀스도 역시 당혹스럽다. 당연히 잠겨 있을 현관문에 대한 방책은 안보이며, 다짜고짜 8층 복도의 현관문을 한 번씩 열어보면서 제발 '열려라 참깨'하는 게 전부이다. 복도의 수많은 좀비들에게 쫓기는 와중에 말이다. 목숨 걸고까지 했던 희망에 대한 계획치고 너무 부실하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 설명할 수 없지만, 8층에서 겪는 그들의 시련이 너무 뜬금없다. 좀비 사태에 대한 생길 수 도 있을 인간군 상중 하나를 택해서 보여주는데, 꼭 그걸로 했어야 했을까 싶다. 굶주림, 외로움, 걱정, 불안함, 좀비와의 혈투 등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걸 다 했기 때문에 색다른 걸 시도해본 거 같지만 되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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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아있다' 스틸컷

 

 

좀비 사태의 주 배경이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복도식 아파트라는 점은 좋았다. 한국사람이 선호하는 주거형태이자, 최고의 투자 대상, 가장 흔하게 살아온 안식처 아파트. 그런 곳에 좀비가 득시글대는 전쟁터이자 고립되는 무인도로 바뀔 때, 또 시체와 피투성이로 얼룩진 아파트를 볼 때의 긴장감과 공포심이 배가된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창궐 시대에 집 밖에 나가서 누군가와 마주치는 거에 대한 두려움과, 웬만하면 집에 있다 보니 코로나 블루에 걸리는 시대에, 집이라는 안식처에서 넷플릭스로 #살아있다를 보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극장보다는 집에서 보는 게 더 어울릴 수 있는 영화다. 당장 현관문 밖이 무서운 현실과 겹치는 영화니까 말이다.

 

부산행, 킹덤으로 K좀비에 대한 눈높이가 한껏 올라간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 포인트가 많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B급 정서를 갖고 있는 '좀비랜드'나 '김씨 표류기'같은 생존기에 대한 영화를 괜찮게 봤다면 '#살아있다'는 그렇게까지 별로인 영화는 아니다. 영화가 갖고 있는 단점들에 비해 '#살아있다'가 던지는 메시지는 괜찮다. 특히 '살아남아야 한다'에서 '살아있다'로 바뀔 때의 안도감과 뿌듯함은 제목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 살아있어요'의 구조요청과, '드디어 살았다'의 안도감이 교차하는 제목이다. 

 

그래서 재밌냐? YES NOT BAD SO-SO NOT GOOD NO
'재미'의 종류 좀비 + 서바이벌
추천 포인트 결말이 엉성해도 과정이 괜찮았다면 모든게 용서가 되는 분들에게 추천
비추 포인트 남들이 욕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비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