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6. 00:02ㆍ영화 보는 중
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는 건 많이 봤지만, 나쁜 놈들도 뭉쳐놓으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를 힘들게 완주했다. 직역하면 '자살 특공대'가 되는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다.
영하 '수어사이드 스쿼드(이하 수스쿼)'는 DC 확장 유니버스(이하 DCEU)에 포함되는 영화다. DCEU는 마블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부러운 DC가 내놓은 모방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맨, 배트맨을 개별 세계관이 아닌 마블처럼 하나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묶어서 영화를 만드는 거다. 그래서 작중 배트맨과 플래쉬가 카메오로 나오고, 작중 수스쿼 멤버들도 DC코믹스의 빌런들로 뭉쳐놓았다.
히어로들도 모이면 티격태격하는데(예: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등) 나쁜 놈들이 한자리에 있으니 오죽할까. 그래서 그들이 함께 활동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와 무찔러야 하는 막강한 적의 존재가 이 영화의 필수요소다. 마블의 어벤져스는 이 두 가지 요소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벤져스 시리즈를 가슴 뛰면서 '어떻게든 지구를 구해야 해'라며 즐겁게 관람했었다. 어벤져스와 달리 DC의 '수스쿼'는 그러질 못한다.
지금부터는 비난 섞인 비평이 이어지므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팬이라면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선 캐릭터가 여러 명이 나오면 영화는 이들의 매력을 살리면서 관객들에게 그 특성과 이름을 어떻게 각인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마블은 주요 캐릭터들의 솔로 영화(토르1, 퍼스트 어벤져)를 제작했고, 돈이 많이 들고 고전적인 방법으로 어벤져스라는 결실을 맺었다. 다른 방법은 마블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초반부에 캐릭터들의 활약 씬을 넣어서 보여주고 그들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주는 방법이다.
'수스쿼'의 오프닝은 정부의 고위급 간부들이 레스토랑에서 밀담을 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두꺼운 파일철을 한 장씩 보여주며 플래시백으로 캐릭터들을 설명한다. 이 플래시백과 레스토랑 씬이 캐릭터 수만큼 반복되면서 최악의 소개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들을 써먹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보여주지 못한다. 그저 '슈퍼맨이 죽었기 때문에'라며 얼버무린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을 죽였을 특급 빌런들을 써야 하는 이유를 작중 인물들도,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그럼 그 나쁜 놈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인챈트리스'라는 캐릭터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또 얼버무린다. 사실 인챈트리스의 마법과 대화가 안 통하는 빌런들의 연관성은 없다. 천하의 나쁜 놈들을 데려다 부려먹으면서 그들에 대한 당근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영화 자체에 대한 존재의 의미가 없다.
빌런 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에 대한 '감정이입'에 있다. 히어로는 본질이 착하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는 걸 보면서 관객들은 쉽게 감정이입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을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빌런 연합에 대한 감정이입은 그 본질이 불가능하다. 히어로라는 대척점(슈퍼맨, 배트맨, 플래쉬 등)이 이미 존재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그들과 맞서 싸우는 빌런들을 본질적으로 응원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에는 보통 '렉스 루터'처럼 캐릭터를 복합적으로 만들거나, 그들은 본래 선한 인물이라는 '성선설'을 끼워 넣고, 주변의 불우한 환경을 보여줘서 점차 악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장형' 패턴이 있다. 수스쿼 멤버들은 이미 완성형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이미 나쁜 짓을 실컷 하고 배트맨, 플래쉬에게 잡혀서 교도소에 갇힌 신세다. 성장형 패턴은 불가능하니까 '알고 보니 착한 놈이었어'라는 성선설을 끼워 넣는다. 딸을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 데드샷, 조커의 연인 할리퀸, 인챈트리스의 숙주 신세인 문준,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릭 대령. 이렇게 4가지 이야기를 캐릭터에 넣고 열심히 섞지만 층분리가 된다.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그들의 인간성을 부여하고 사연팔이를 시연한다.
문제는 수스쿼가 표방하는 차별점이 '나쁜 놈들'이라는 점이다. 악한 이들의 이야기가 매력인 피카레스크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인간성, 성선설을 설득시키려 하는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걸 만드는 영화 관계자들도, 그걸 보는 관객들도 일치 화합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어려운 프로젝트다. 그럼 감독의 연출과 제작사의 화끈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또 그러질 못했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최근 '택스 콜렉터'를 찍은 감독이다. 갱들을 보호해주는 갱, 무서운 갱들에게 보호비로 삥 뜯는 더 무서운 녀석들에 대해 1도 설득 못 시키는 감독이다. 수스쿼는 비싼 제작비로 제작사의 간섭이 문제였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택스 콜렉터'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영화 '택스 콜렉터' 1천원 관람권 후기
영화의 시작점부터 문제가 가득해도, 비싼 제작비(1억 7500만 달러)를 들인 화끈한 액션신들을 보는 재미를 갖추면 된다. 킬링 타임용 팝콘 무비의 재미도 당연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블 영화를 보러 갈 때 그들의 사연만 보러 가는 게 아니다. 천조국 영화의 돈지랄로 구현한 화려한 영상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수스쿼는 그런 돈지랄도 보여주지 못한다. 윌 스미스와 마고 로비 몸값으로 다 썼나 싶을 정도로 비싼 티가 안 난다. 이 정도면 가성비 최악의 블록버스터 영화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그렇게 욕하면서도 결국 극장에서 보는 이유는 CG로 구현한 로봇들의 액션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수스쿼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 수스쿼 멤버들의 액션은 볼만하냐. 또 그렇지 않다. 데드샷은 그 이름답게 총만 쏜다. 총 쏘는 게 멋지긴 하지만 사실 총기 액션이 지루하기 십상이라 가장 어려운 액션에 속한다. 그래서 화려한 카메라 워크로 커버해야 한다. '존 윅'은 건푸 라는 총기를 이용한 무술 같은(이름부터 쿵후를 따라 했다) 걸 주창해서 단순하면서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데드 샷은 그런 거 없다. 계속 총을 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먹힌다. 캡틴 부메랑은 이름답게 부메랑을 잘 써야 한다. 부메랑이 던지면 돌아오고, 한번 던져서 여러 명을 해치우는 그런 걸 보여줄 법도 한데, 왜 이름이 부메랑인지 모르겠다. 그냥 성질 나쁘고 말 안 통하는 미친놈으로 비친다. 제일 의문점은 할리퀸이다. 작중 할리퀸의 주 무기는 총보다는 야구방망이다. 권총을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데드 샷이 총기 액션을 담당하니까 그녀는 야구배트를 사용한다. 신기한 건 한번 휘두를 때마다 푸딩 으스러지듯 인챈트리스의 부하 포지션의 이름 모를 꼭두각시 괴물들의 머리가 부서진다는 거다. 머리가 약점이구나 싶지만 데드샷의 헤드샷은 그들에게 안 먹힌다. 릭 대령도 전투 좀 하고 총 좀 쏠 거 같은데 매번 납치당한다. 할리퀸의 목재 야구방망이는 복사나무 같은 퇴마 성능의 특수소재인가 의문이 든다.
이 영화가 히든카드로 내세우는 거는 '조커' 캐릭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로 정점을 찍은 만큼 DC에서 조커를 진짜 이름 그대로 '조커'로 사용한다. 그럼 그렇게 돼야 될 텐데 매번 불쑥불쑥 나타나서 영화의 흐름을 깬다. 쟤가 왜 나올까, 왜 내가 조커와 할리퀸의 사랑이야기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허술한 각본 탓인지, 무슨 영상 프레젠테이션 같은 편집 탓인지, 대책 없는 감독의 연출 탓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필자가 본 조커를 연기한 배우는 총 4명이다. 잭 니콜슨, 히스 레저, 호아킨 피닉스, 그리고 자레드 레토. 누가 최고인지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누가 최악인지는 대동단결할 것 같다. 누가 봐도 연기톤이라고 느껴지는 자레드 레토의 조커는 심각할 정도로 꼴 보기가 싫었다. 같이 한 화면에 연기를 하는 마고 로비가 딱할 정도다. 그래서 그녀가 연기하는 할리 퀸은 조커와 같이 나오지 않을 때 매력적이다.
수스쿼 멤버들의 능력을 면면히 보면 사실 몸으로 때우는 캐릭터들이 많다. 그래서 비장의 카드를 하나 넣는데, '블리자드'다. 어벤져스의 헐크와 그 대우가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 작중 아이언맨은 '우리에겐 헐크가 있다'라며 그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하는데 수스쿼에서는 데드샷이 블리자드를 그렇게 대우한다. 너무 먼치킨인 캐릭터를 어떻게 가둬둘까. 초반부터 휩쓸고 다니면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본인의 능력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헐크 솔로 영화를 접했기 때문에 헐크의 걱정과 두려움에 공감하지만 블리자드는 1도 모른다. 그도 본인의 화끈한 능력을 두려워하고, 데드샷은 믿음을 계속 주는 장면을 연출한다. 블리자드 역시 사연팔이를 하지만 흔하게 접한 사연이다. 캐릭터에 연민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영화의 제작비를 좀 갖다 썼구나를 느낄 수 있는 후반부의 액션을 담당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어떨까. 슬립 낫, 킬러 크록, 카타나. 슬립 낫은 목에 주입한 나노폭탄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 킬러크록은 피부만 괴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악어였구나 하고 나중에서야 깨닫는 캐릭터. 카타나는 총기 액션만 보여주면 지루하니 검을 이용한 액션 연출을 위한 캐릭터. 캐릭터의 도구화를 떠나 병풍화가 심각할 지경이다.
반전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스쿼가 맞서 싸워야 하는 메인 빌런을 00으로 표기하겠다. 00의 막강한 파워를 보여줘야 수스쿼의 존재의 이유와 DC가 만든 이 영화의 명분이 산다. 당연하지만 수스쿼는 그것마저 보여주지 못한다. 이제 이런 말을 쓰고 있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00은 주문을 외우면서 이상한 춤을 춘다. 주술사라는 성격상 배우의 캐릭터 해석이라고 치자. 그런데 카리스마가 1도 없다. 우스꽝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00의 세상을 파멸시킬만한 힘이 있느냐. 그건 있다. 근데 그걸 슈퍼맨도 아닌 수스쿼들이 어떻게 막느냐. 거기서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주에 떠다니는 인공위성을 한큐에 부수고, 미국 내 주요 보안시설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드는 00은 수스쿼들의 몸빵에 당한다. 왜 그럴까. 수스쿼의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수스쿼의 활약상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 나름대로 맞서 싸우는 모습, 노력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래서 하도 맞다가 00은 '이제 그만'하면서 그들의 무기를 다 날려버린다. 적당히 맞아주다가 못 참겠다 싶은 거 같다. 그리고 뜬금없이 그들에게 환영을 보여주면서 회유한다.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라며. 근데 또 순식간에 환영을 깬다. 이렇게 허술한 환영술사가 따로 없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스칼렛 위치의 환영은 워낙 심각해서 어벤져스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계속 안겨줬다. 그 후유증이 아이언맨과 헐크의 대결이라는 명장면을 연출하고, 아이언맨 3까지 이어진다. 수스쿼의 환영은 무슨 낮잠에서 일어나듯이 빈약하다.
하다 하다 안된 00은 갖은 수를 써서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지만 수스쿼의 폭탄 두 방에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마법에 저항력이 있는 등의 특수 소재로 만든 폭탄이라는 묘사도 없다. 폭탄 두 방이라. 그냥 천조 원의 국방력을 자랑하는 미군이 나서도 됐을 일이다. 도시 하나가 마비되고 작중 인물들이 다 대피했을 텐데 미군은 뭐했을까. 언급도 없다. 그러면서 영화 쿠키 영상에는 윌러 국장은 들키면 큰일 난다고, 책임지고 싶지 않다며 브루스 웨인의 도움을 요청한다. 미국의 막강한 정보력은 어디에 쌈 싸 먹었을까. 대체 뭐 하자는 영화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흥행성적이다. 자그마치 월드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이 7억 5천만 달러다. 그간 만든 DC영화 중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DC입장에서 속편을 안 만들 수가 없을 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영화의 혹평을 의식했는지, 속편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감독을 데려오고, 리부트에 가까운 리런치(Re Launch)로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들고 있다. 데드샷을 맡은 윌 스미스를 제외하곤 기존 주연진들도 그대로 유지된다. 어떤 영화가 될까. 21년에 개봉한다고 하니 연기 없이 극장에서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안티 히어로 액션 영화 | ||||
추천 포인트 | 새롭게 리런치 되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볼 예정인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DC에게 또 실망하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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