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8. 16:34ㆍ영화 보는 중
10대라는 자유분방함, 젊음의 에너지, 고등학교라는 작은 사회 등 하이틴 영화들은 그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하이틴 영화는 사실상 대가 끊겼다고 봐야 한다(차인표 주연의 '짱' 정도만 겨우 생각난다). 한국의 고3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학업 스트레스가 덜하고, '성'에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덕에 '하이틴'은 미국 영화에서 자주 찾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시얼샤 로넌 주연의 '레이디 버드', 넷플릭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 친구에게', '키싱 부스'등 할리우드는 이런 하이틴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이번에 개봉한 '북스마트'는 공부밖에 모르는 범생이 여학생 두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키 작고 뚱뚱한 여학생인 몰리는 여타의 영화에서는 소심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북스마트의 몰리는 똑똑한 학생회장에 매사에 당당하고, 할 말은 하고 사는 당찬 캐릭터로 나온다. 그런 그녀의 베프 에이미가 되려 소심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말도 못 붙이는 성격의 소유자다.
몰리와 에이미는 남들이 놀 때 모든 걸 포기하고 공부만 주구장창 해서 당당히 예일대와 콜롬비아 대학이라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입학했고, 내일이면 졸업식인 마지막 등굣길에 나선다. 그리고 몰리는 화장실 칸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전형적인 뒷담화를 듣게 된다. 보통 일반적인 너드 캐릭터라면 조용히 듣곤 울분을 참으면서 다들 떠날 때까지 쭈그러져 있겠지만 우리의 몰리는 그렇지 않다. 당당히 나오면서 '난 너희들은 못 가는 명문대에 간다.'라며 자신을 험담한 친구들을 디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보다 열등하고 못났다고 생각한 친구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데. '나도 예일대 가는데?'
고등학교 내내 힘든 공부를 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남들은 못 가는 명문대에 들어가 성공하는 인생을 살려고 했던 몰리. 그녀가 꿋꿋이 도서관을 지키면서 얻은 아이비리그 초대장이 놀 거 다 놀고 멍청한 줄 알았던 날라리 애들에게도 갔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몰리는 단 하루 남은 학창 시절을 '닉의 이모의 집에서 하는 파티'에서 광란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놀 줄 몰랐던 '아싸'들이 하루 만에 '인싸'가 돼서 파티에 참석하려는 과정을 그린 영화 '북스마트'는 시작부터 일반적인 미국 하이틴 영화의 전형을 한참 벗어난다.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고백한다거나, 졸업파티(프롬)에서 첫 경험을 고대한다거나, 대학에 가면 떨어져 지내야 하는 커플 간의 고민을 그리던 여타 영화들의 길을 걷지 않는다. 놀아본 적도 없는 애들이 다짜고짜 마지막을 즐기겠다고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방법을 몰라서 우왕좌왕한다. 파티에 가는 과정을 유쾌하고 재밌게 그리면서, 에이미와 몰리의 우정을 그리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미국에서 흔한 것처럼 보이는 섹스와 마약도 고정관념을 뒤엎으면서 과하지 않게 그려낸다.
좌충우돌 광란의 하룻밤을 보낸 몰리는, 다음날 졸업식 연사에서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너희가 다 보인다'라고 한다. 그녀가 그만큼 하루새에 성장했음을 뜻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다. 지지, 호프, 닉, 애나벨 등 그저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이름 모를 학생 A, B들이 주조연 가릴 거 없이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저마다의 서사가 부여돼서 하나하나 살아있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그저 몰리와 에이미를 쫓으면서 별생각 없이 파티장을 따라다녔을 뿐인데 말이다. 이는 탄탄한 각본과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은 6월이 졸업시즌이고 9월이 새 학기가 시작이지만 한국은 2월이 졸업이고 3월이 입학이다. 생각해보니 한국의 졸업시즌을 맞춰서 개봉일을 잡은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19 팬데믹 덕에 정신없었을 마지막 학창 시절을 이 영화로나마 유쾌하게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추천한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미국 하이틴 영화 | ||||
추천 포인트 | 색다른 청춘 영화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정신없는 영화가 싫은 분들에게 비추천 |
여담으로 감독 '올리비아 와일드'는 본래 배우 출신이다.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 '카우보이&에일리언'(예시로 든 대작 두 편이 다 망한 영화라는 아이러니..)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번 '북스마트'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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