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0. 17:19ㆍ영화 보는 중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국판 리메이크작이 새로 개봉했다. 영화 '조제' 다.
이 영화는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한다. 2004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해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개가 됐다. 그 뒤 입소문이 퍼져 한국에서는 2017년에 재개봉도 하는 등, 아는 사람은 다 좋아하는 영화가 됐다. 그리고 2020년 12월에 한국에서 리메이크 작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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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의 뜻은 프랑수아주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휠체어를 떠날 수 없는 불편한 몸 때문에 조제는 할머니가 주어 오는 헌책을 보면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 현실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였고, 영석에게 '조제'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리고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는 둥, 세계 곳곳을 여행해봤다는 둥의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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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작은 항상 그렇듯, 원작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원작이 좋아서 했을 것이고, 관객 중 대부분도 원작의 매력에 극장 찾았을 테니까. 필자도 일본판을 좋아해서 2~3번 찾아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정서에 맞게 리메이크했다는 이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판보다는 일본 원작이 낫다.
원작과 김종관 감독의 '조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차이점은 제목이다. 원작의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큰데, 어떤 차이점을 두기 위해서인지 여주인공 이름인 '조제'만 따왔다. 그래도 원작에 대한 오마주로 호랑이를 짤막하게 보여준다. '물고기들'은 원작과 같은 의미로 후반부 마지막 시퀀스에서 활용되었다.
영화 '조제'는 올해 본 영화들 중에 영상미가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조제가 사는 허름한 집 구석 구석, 먼지 하나, 빈 병 하나 신경 쓴 티가 난다. 작중 배경이 겨울인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외풍에 보는 이도 춥게 느껴질 정도다. 조명과 화면 앵글이 좋아 배우들의 매력도 잘 표현해 냈다. 한지민 배우의 '조제' 캐릭터 해석도 좋았다. 감정 기복 없이 무심히 한 마디씩 내뱉는 듯한 대사 전달에 그녀의 연기 내공이 절로 느껴졌다.
영화 제목은 '조제'지만, 감독은 주인공 '영석'에 집중한다. 분량이나 중점을 둔 캐릭터 묘사를 생각하다면 제목을 '영석'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캐릭터 묘사를 어떤 사건이나, 대사로 하는 게 아닌, 주변 환경을 통해서 보여준다. 영석의 여자 관계, 졸업 후 취업, 벽이 너무 얇아 소음이 신경 쓰여 관계도 맘대로 못하는 고시원, 아르바이트를 쉬면 안 되는 상황, 세탁소에서 빌렸다는 면접 정장, 아웃렛에서 싸게 샀다는 코트, 돈 한 푼 안 주면서 구두에 신경 쓰라는 오지랖 등. 영석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의 기본 플롯은 간단한다.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헤어진다.' 1시간짜리 단만극으로 끝날법한 이야기를 2시간짜리 영화 러닝타임으로 늘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사족을 붙이거나, 삼각관계를 만드는 등의 캐릭터를 더 등장시키거나, 어떤 사건을 일으켜서 해결해야 한다거나 등등. 감독은 이것들을 택하지 않는다. 그저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주변 환경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매 씬의 여운이 참 길다. 영화의 흐름도 루즈해진다. 처음에 좋았던 영상미도 30분 이상 보니 지겨워지고, 귀에 꽂히던 배경음악도 질리기 시작한다.
조제 캐릭터도 주변 환경을 통해 보여준다. 조제의 집에 소품팀이 신경을 많이 쓴 건 알겠는데, 그게 전부다. 그래서 뜬금없이 5년 후로 넘어가서 이어지는 이야기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제가 왜 갑자기 이별하자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환경 묘사에만 신경 쓰고 캐릭터 묘사는 헐겁다 보니 생기는 플롯의 구멍이다. 그냥 화면 좋고 음악 괜찮던 영화로 끝이 나버린다.
한국영화에서 쉽게 접하던 신파, 감정과잉들이 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사진 전시를 보라고 2시간 동안 관객을 앉혀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원작에서 츠마부키 사토시가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팍 터뜨리던 눈물의 여운을 한번 더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일본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넷플릭스, 왓챠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로맨스 영화 | ||||
추천 포인트 | 영상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원작의 팬인 분들에게 비추천 |
영화 '조제', 원작과의 차이점 알아보기 (스포有)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영화 '조제'가 공개됐다. 문득 원작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졌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일본판)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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