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9. 00:02ㆍTV 보는 중
14시간 동안 변죽만 울리더니, 결국 시시한 '비밀'로 마무리 짓다.
조승우, 배두나 주연의 드라마를 넷플릭스 통해서 뒤늦게 완주했다. 드라마 '비밀의 숲'이다.
2017년 소위 '창크나이트'라 불리며 명품 드라마로 꼽히던 비밀의 숲이 3년 만에 시즌2로 돌아왔다. 한국 드라마는 일본, 미국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시즌제 드라마가 드물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장사 잘되는 드라마를 한 번 더 만들고 싶어 하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을 그대로 모으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연배우를 바꾸고 시즌2가 나오거나(예: OCN 보이스), 기본 포맷만 유지하고 다 바뀌거나(SBS 아테나: 전쟁의 여신)하는 식이 많았다. 그래서 '비밀의 숲 2'처럼 모두가 다시 모이는 후속 시즌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매우 귀하고, 반가운 일이었다.
한 가지 살인사건에 집중했던 시즌 1과 달리, 시즌2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굵직한 어젠다를 두고 세세한 사건들을 포진해뒀다. 통영 해변 익사 사고, 세곡 지구대 경찰 자살 사건, 변호사 사망 사건. 세 가지 사건을 얼기설기 엮다가 중반부에 시즌1 때처럼 000 납치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000납치사건과 세 가지 사건의 연관성을 찾는데 주력한다.
시즌2의 문제점은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 1화 기준 60~70분, 16부작을 이끌고 갈려면 지속적인 사건의 떡밥과 회수를 반복해야 하는데, 떡밥만 14시간 동안 뿌리게 된다. 상술한 세 가지 사건을 한 번씩 다 찔러보면서 산만하게 극을 진행한다. 작가가 과자 부스러기를 뿌려주면 시청자들이 줏으면서 드라마를 따라가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하고 있다. 000이 납치된 후 작중 인물들도 이렇게 말한다. '보통 뭐라도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까지 (단서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드라마의 베이스인 수사극으로서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스스로 말하는 꼴이다.
시즌1에서 프로파일링과 현장검증에 탁월한 수사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황시목 검사(조승우)는 시즌2에서 그 영민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얻어걸릴 때까지 사건들을 찔러보고만 다닌다. 황시목 검사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시즌1의 인기를 끌었던 걸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행보다. 여성 보조 캐릭터가 아닌 주도적으로 수사에 나섰던 한여진 경감(배두나)도 검경 사이의 정치놀음에 주목하는 데에만 사용한다. 후반부에 써먹을 한빛 부장(전혜진)과의 연대감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작가의 필력이 의심이 들 정도로 캐릭터들의 행동들이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1~14화 동안 뿌리던 떡밥을 단 15,16화 2시간 동안 허겁지겁 회수한다. 그렇게 세 가지 사건들은 어떤 수사관들의 추리력이 아닌 사건 당사자들의 허무한 자백으로 해결된다. 뭐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길래 이렇게 까지 떡밥만 뿌렸나 했지만 허무하기 짝이 없다.
시즌1의 결말부의 사건의 진상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가 1~15부 동안의 메시지와 부합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었다. 시즌2는 그러지 못했다. 그냥 무의미한 의심만 하다가 허겁지겁 결말지은 함량 미달의 수사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비밀의 숲은 수사극이 전부가 아닌, 조직 내부의 음모를 파헤치는 드라마다. 시즌2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실상은 사실 허무하기 짝이 없다. 뿌리를 캐내지 못하고 잡초만 뽑고 만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즌3에 대한 여지를 많이 남기고 드라마가 끝났다는 점이다. 시즌3을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시즌2를 쓴 티가 너무 난다. 정재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대기업의 실체를 파헤치는 걸로 시즌3의 여운을 많이 남겨놨는데, 시즌제 드라마를 잘못 이해한 거 같다. 매 시즌, 매 화에서 연속극의 재미를 던져주면서 다음 시즌을 그렸어야 하지 않을까. 한 시즌을 통째로 후속 시즌의 징검다리로만 쓴다면 작가와 드라마를 믿고 본 시청자를 우롱하는 꼴이다.
전작의 명성과 그대로 출연하는 배우진들로 시즌2의 평균 시청률은 시즌1의 2배 정도 됐다. 시청률만 본다면 성공적인 시즌제 드라마가 됐다. 시즌2의 멍에는 시즌3으로 넘어갔다. 드라마 자체를 믿고 출연한 배우진들, TV 앞에 모인 시청자들을 생각한다면 시즌3은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 시즌1이 백상 예술대상 TV부문 대상에(개인이 받거나, 작품 자체가 받기도 한다) 빛나는 작품성이었던걸 생각하면 아쉬움이 더 크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범죄, 수사, 사회고발 드라마 | ||||
추천 포인트 | '비밀의 숲'이 다루는 정치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시즌1의 재미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비추천 |
'TV 보는 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2' 후기: 역시 사람에겐 사랑이 필요해 (0) | 2020.12.02 |
---|---|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1' 후기: 가족간의 대화가 필요해 (0) | 2020.12.01 |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후기: '에밀리'와 '파리'가 인상적인 드라마 (0) | 2020.11.25 |
넷플릭스 드라마 '대시 & 릴리' 후기: 2020년에도 통하는 펜팔 감성 (0) | 2020.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