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키 데스데이' 후기: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모를 지경

2020. 11. 27. 01:30영화 보는 중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모를 지경

공포, 호러 무비의 명가라고 칭송받는 '블룸 하우스'의 신작을 보고 왔다. 영화 '프리키 데스데이' 다.

유니버설픽처스, 영화 '프리키 데스데이'포스터


평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영화 후기를 나름 길게 쓰려고 노력해왔다. 재미있으면 재밌는 이유, 없으면 없는 이유를 상세히 서술하는 것이 읽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거 조차 맘대로 안된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도저히 길게 쓸만한 내용도 없는 영화를 보고 왔기 때문이다. 영화가 원체 엉망진창이어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조차 모르겠다. 

 

영화는 '조조의 기묘한 모험'에서 나왔을법한 가면들과 정체불명의 고대 유물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영화 중반부에 아즈텍 문명에서 제사의식을 하면서 썼던 단검이라고 나오지만,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남녀 주인공의 바디체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신비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뿐이니까. 사실 아즈텍은 이집트처럼 그렇게 오래된 문명도 아니다. 그때 한반도는 고려시대였으니까.

 

이 영화가 다른 호러, 공포영화들과의 차이점으로 내세운 거는 남녀 간의 바디체인지다. 덩치 큰 남자 살인마와, 여리여리한 여고생이 몸이 뒤바뀐 데서 오는 상황이 가져다주는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래서 영화는 바디체인지가 주는 클리셰들을 러닝타임 동안 '다' 보여준다.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여고생 밀리(캐스린 뉴튼)는 최대한 찌질하고, 소심하게 묘사된다. 주변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말도 못 붙인다. 그래도 밀리의 베스트 프렌드들은 남겨둔다. 살인마(빈스 본)와 몸이 뒤바뀐 뒤에 자신을 알아봐 줘야 하니까.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선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살인을 다루는 영화인데 살인과정에서 영화적 재미를 찾아볼 수 없다. 호러, 공포영화임에도 서스펜스와 스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극 중 인물들은 계속 우스꽝스럽게 뛰어다니고, 허접하게 몸싸움을 하고, 어이없이 죽는다. 긴장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 다음엔 얘가 죽겠구나' 싶으면 여지없이 걔가 죽는다. 바디 체인지 후의 살인과정도 재미가 없다. 여고생 밀리의 몸을 한 살인마는 피해대상들에게 손쉽게 다가가서 죽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전혀 이용하질 못한다. 항상 가녀린 몸으로 상대방과 몸싸움을 행한다. 살인과정 중에는 고어물에 가까운 높은 수위의 적나라한 시체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게 재밌으면서 고어물이면 상관없지만, 다른 거도 못 챙기면서 잔인한 것만 보여준다.

 

작중 살인마의 몸을 한 밀리가 학교를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아무와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조그만 시골마을에 몽타주가 다 떴는데도 그렇다. 살인마의 키가 190이 넘고 항상 같은 옷만 입는데도 버젓이 잘 돌아다닌다. 영화적 서사를 위한 어느 정도의 허용치가 있어야 한다지만 도를 지나쳤다. 각본이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남녀 바디체인지+코미디+밀리의 성장물+고어물+서스펜스+스릴러]를 다 챙기고 싶었겠지만, 무엇 하나 건지질 못했다. 그냥 미국 시골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에 그쳤다.

영화 '프리키 데스데이'의 제작비는 500만 달러다. 이 정도 예산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하고, 호주, 러시아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제작비 대비 흥행은 잘되도, 이런 퀄리티의 영화만 계속 만든다면 호러 '명가'에서 '폐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가득한 생각이 든다.


ps. 쿠키영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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