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트 월' 후기: 인해전술로도 덮을 수 없는 허접함

2020. 11. 24. 00:02영화 보는 중

'맷 데이먼' 배우의 영화 중 망작 반열에 들었다는 작품이 있다. 그것도 중국 영화에 출연하면서 말이다. 넷플릭스 통해서 본 영화 '그레이트 월'이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

개봉일을 찾아보니, 최초 중국 개봉은 2016년이고, 한국 개봉은 2017년 2월이었다.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예고편에서 접했던 '그레이트 월' 특유의 이질감이 기억이 난다. 중국 특유의 대규모 제작비로 만든 영화인 건 맞는데 맷 데이먼이 화면에 잡히는 거였다. 맷 데이먼은 할리우드 내에서도 A급 배우일 텐데 중국까지 날아가서 촬영을 했다는 게 다소 어색해 보였던 기억이 난다. 

 

 

맷데이먼은 본인의 영화 출연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로 감독을 꼽았었다. 감독을 바꾸지 않는 조건으로 속편을 출연했던 '본 시리즈'(1편만 '더그 라이먼'이고 나머진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다)를 생각해보면 된다. 장예모 감독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나름 잘 추구해왔고, 미국 내에서도 나름 유명한 감독으로 꼽혀왔다면 그의 출연이 이해가 안 되진 않는다. 물론 '그레이트 월'의 출연 결정이 감독 때문이었는지 출연료 때문이었는지는 본인 말고는 알 길이 없다. 

 

"그레이트 월, 즉 만리장성은 정체불명의 괴수인 '도철'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다. 도철은 60년에 한 번씩 8일 동안 나타나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도철과 싸우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유럽에서 온 맷 데이먼(윌리엄 역)이 중국(송나라 배경)을 구한다."라는 간단한 줄거리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물론 줄거리 여기저기에 2시간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살을 붙였다. 맷 데이먼이 화약 때문에 중국에 온 거라는 둥, 수상한자로 잡혔으나 도철을 물리치면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동료들의 희생으로 결국엔 중국을 구해낸다는 둥.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

애초에 이 영화에서 우리가 찾는 건 뛰어난 작품성, 예술성이 아님이 분명하다. 우리는 화려한 볼거리, 돈을 얼마나 영화에 발랐는지, CG구현은 자연스러운지를 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영화 '그레이트 월'은 이 목적성에 충분히 부합한다. 중국의 인해전술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중국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1.5억 달러)로 만든 만큼 볼거리는 확실하다. '인'해전술이라서 사람도 많지만 괴수들도 많이 보여준다. 그리고 색깔별로 구분한 중국 군대의 위용은 전대물(예: 후레쉬맨, 파워레인저 등)스러운 맛도 있지만 부대 특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을 보면 원색 별로 특성을 부여했던 게 여기서도 구현됐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레이트 월'의 장점은 여기까지다. 초반 30분의 전투에서 스케일만 보여줬던 전투에 익숙해지고 나면 별다른 특색을 보여주질 못한다. '장벽, 성벽에서 괴수들과 싸운다'는 것은 그간 익히 많이 봐왔던 내용이다.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왕좌의 게임'과 비슷한 성격의 '진격의 거인'까지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장예모 감독은 '그레이트 월'만의 차이점을 보여줘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차이점은 맷 데이먼과 풍등으로 구현한 열기구 정도가 전부였다. 도철이 보여주는 포악함, 잔인함을 보여줬다면 작중 군인들이 느꼈을 공포심을 같이 느꼈겠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괴수 도철은 좀 크고, 사납고, 힘이 세 보이는 게 전부였다.

 

중국 고대 청동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상의 동물 '도철'의 얼굴 (눈과 뿔을 표현하는게 일반적인 특징임)

 

괴수 '도철'은 실제 고대 중국에서 내려오던 상상의 동물이라고 한다. 4흉(궁기, 도올, 혼돈, 도철) 중 하나로 옛날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중국의 고대 청동기에 도철의 얼굴이 새겨진 걸 쉽게 볼 수 있는데 탐욕을 경계하고 무격신앙의 상징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영화 속 괴수의 이마 문양이 특이하다 싶었는데 본인들의 전설 속 모습을 구현해 보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다. 영화에서는 상상의 동물이 아닌,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나온듯한 외계 생명체인 걸로 묘사됐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젊어 보이고 멋진 '유덕화' 배우는 생각보다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다. 되려 '경첨'(린메이 역) 배우의 비중이 생각보다 많아서 의외였다. 그런데 큰 비중 치고는 모자라는 연기력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맷 데이먼 혼자 열심히 날아다니고, 활 쏘고, 창 던지고를 다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항상 누군가에게 구출 당하거나(라이어 일병 구하기, 마션), 정체성을 잃고 방황했던 (굿 윌 헌팅, 본 시리즈) 역할만 보다가, 전 인류를 구하는 영웅의 모습을 중국을 배경으로 보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레이트 월'의 제작비는 1.5억 달러, 마케팅비 8천만 달러, 총합 2.3억 달러다. 중국에서 1.7억 달러나 벌었는데도 전 세계 박스오피스는 3.3억 달러밖에 안 되는 거 보면은 사실상 망했다고 봐야 한다. 넷플릭스를 구독 중이고, 마땅히 볼 건 없고, 중국 특유의 대륙 스케일의 전쟁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보는 걸 추천한다.(그 외에는 비추천한다.)

 

그래서 재밌냐? YES NOT BAD SO-SO NOT GOOD NO
'재미'의 종류 괴수가 나오는 고대 전쟁 영화
추천 포인트 맷 데이먼의 팬이고, 큰 스케일의 중국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비추 포인트 '기승전결'을 중요시 여기는 분들에게 비추천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영화 '그레이트 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