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후기: 쉽게 극복되지 않는 상처도 있음을

2021. 4. 14. 00:22영화 보는 중

힐링. 상처 아물듯 모든 걸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 TV 프로그램, 자기 계발서들은 무수히 많다. 볼 때는 괜찮지만 돌아서면 머릿속에서 쉽게 사그라든다. 적당히 따뜻한 말로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거짓 위로는 아니었을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어설픈 힐링을 제시하는 게 아닌, 누구나 마음속에 쉽게 극복되지 않는 상처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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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픽쳐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형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은 '리 챈들러(케시 애플렉 분)'. 형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수년간 외면해온 고향 '맨체스터'로 향한다. 홀로 남겨진 조카 '패트릭(루카스 해지스 분)'의 후견인이 되어 성년이 될 때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 리는 패트릭에게 보스턴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조카는 그동안 살았던 맨체스터를 떠날 수 없다며 반목한다. 

 

리 챈들러에게 있어 맨체스터는 악몽같은 과거를 계속 상기시키는 지옥 같은 곳이다. 그래서 잠시라도 머물고 싶지 않으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애써 외면해왔던 비극과 마주쳐야 한다. 다른 영화에서 '리' 같은 캐릭터를 보게 된다면 영락없는 패배자로 그린다. 치유시켜야 하는 미션의 대상자로 다룬다. 인생은 아름답고,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심리 상담도 받고, 멘토를 만나 깨닫게 한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런 어설픈 힐링을 제시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버거운 여정 속에서 쉽게 극복되지 않는 상처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상처를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간도 있음을 보여준다.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버티는 게 삶이라는 것임을 말이다. 

 

제목의 '맨체스터'라는 단어때문에 영국의 축구팀이 우선 떠오를 수 있다. 맨체스터는 미국 보스턴 근처의 지역명이다. 제목을 직역하면 '바닷가의 맨체스터' 정도지 않을까. 한국영화에서 '리 챈들러'를 표현했다면 방구석에 처박혀 세상 다 포기하고 소주 병나발 불면서 폐인처럼 사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먼저 떠오른다. 다혈질에 매사에 불만이 많은 그런 아저씨 말이다. 그렇게 정형화될 수 있는 캐릭터를 오버스러운 감정표현 없이 속이 썩어 들어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한 캐시 애플렉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벤 애플렉과 닮은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연한 생각이다. 벤 애플렉의 동생이기 때문.)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에 후보에 올라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줍짢은 힐링물에 질렸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삶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가 가볍지 않으면서 건강한, 좋은 영화다.

 

그래서 재밌냐? YES NOT BAD SO-SO NOT GOOD NO
'재미'의 종류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인생 영화
추천 포인트 '좋은'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
비추 포인트 교훈 가득 멘토링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비추천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