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8. 23:58ㆍ영화 보는 중
이 영화를 보면 누군가 떠오른다. 그분의 함자 한 글자 나오지 않지만 누가 봐도 자연스레 연상될 거다. 군부 독재시대에 가택연금을 당하고 민주화를 외쳤던 故김대중 대통령 말이다. 가택연금과 도청을 소재로 코미디, 드라마 장르의 영화 한 편이 나왔다. 영화 '이웃사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실제로 가택연금을 당했었다. 박정희 정권 때와 전두환 정권 때 둘 다 그렇다. 영화의 배경인 1985년, 미국에서 귀국 후 김포공항에서 안기부 요원들에게 연행됐고, 동교동 자택에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실제 가택연금 중에 영화처럼 도청을 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 '1987'처럼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대통령 선거의 직선제 수용(그전까진 간선제였다.), 노태우 - 김영삼에 이어 1998년에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예고편을 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영화가 표방하는 장르는 코미디다. '도청'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코미디와 긴장감은 이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그 타율이 증명됐다. 보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하는 압박감, 그리고 상대방 몰래 도청을 하면서 생기는 긴장감이 영화적 재미를 자아낸다. 이웃사촌은 이런 점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지, 적재적소에 적당히 웃길 줄 아는 코믹한 장면들을 잘 연출했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 이르면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신파에 다다르기 위해 감정과잉에 치닫는다. 누군가 계속 다치고, 누군가 계속 울며, 누군가 계속 죽는다. 이런 필요 이상의 감정과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지치게 만든다. 영화 속 현실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군부독재 사회인 건 알지만 초반의 분위기와 너무 달라져서 영화의 장르가 바뀌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런 영화들이 원체 많아서 그렇게 어색하지도 않은 게 사실이다. 또 그저 그런 한국영화 한 편이 추가됐나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
영화는 그렇게 신파로 직행하나 싶더니, 후반부에 이르러 색다르고 산뜻한 시도를 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기존의 한국영화 문법을 다소 벗어나는 행보를 취한다. 상술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실제 역사가 아닌 영화적으로 대체 역사를 택한 거다. 하긴, 작중 오달수가 맡은 역이 김대중 대통령이겠거니 어렴풋이 생각하는 거지 실제로 그렇다고 한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선택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치면서 적당한 감동을 선사한다.
상술했듯 연출은 요소요소 적절히 영리한 선택을 했고,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1980년대의 시대상 구현도 잘 해냈다. 다만 영화적으로 감동 요소를 넣기 위해 안기부 측 인물들의 획일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 해석은 다소 아쉬웠다.
영화 '이웃사촌'의 제작비는 80억 원, 손익분기점은 240만 명이다. 극장가에 '삼토반'-'도굴'에 이어서 흥행 강타자를 노리고 타석에 들어선 '이웃사촌'이 11월 25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적절한 웃음 - 적당한 감동을 얻고 싶다면 '이웃사촌'을 추천한다. 편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서고 흐뭇한 미소를 갖고 나오게 될 테니까.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충무로의 흥행 공식 답습 영화 | ||||
추천 포인트 | '선코믹+후감동' 한국 영화를 즐기는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영화로 웃고싶은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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