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7. 00:02ㆍ영화 보는 중
눈보라 휘몰아치며 폭설이 내리는 어느 날, 남북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미국 어느 곳. 죄수를 이송 중인 사형집행인과 현상금 사냥꾼, 보안관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눈보라를 피해 산속 잡화점(=산장, 휴게소)으로 들어간다. 각자 사연을 가진 8명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게 되고, 한 사람씩 비밀이 밝혀지면서 타란티노의 영화 '헤이트풀 8'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하면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킬빌' 때문에 무자비한 복수극, 핏빛 액션이 먼저 떠오르는 분들이 많다. 사실 '킬빌'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타란티노'답지 않은 영화다. 타란티노는 특유의 B급 감성(펄프 픽션) 그리고 재기 발랄한 입담(저수지의 개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그리고 종반부에 폭발하는 인물들의 감정(장고)을 정말 잘 다룬다. 영화 '헤이트풀 8'은 이러한 '타란티노'의 특징들이 가득 담긴 영화다.
눈이 매섭게 휘날리는 설원 위에 마차 한 대가 처연하게 계속 달리는 장면 위로 스산한 ost가 깔린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르꼬네'의 ost다. 엔니오 모르꼬네는 '헤이트풀 8'을 통해 87세의 나이로 음악인생 61년 만에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헤이트풀 8'은 주옥같은 명곡을 만든 거장의 아카데미 수상의 불운을 끊어준 작품이 된 셈. (엔니오 모르꼬네는 4년 뒤 2020년, 91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상술한 시놉시스만 본다면 이게 무슨 영화인가 싶을 수 있다. 잡화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8명의 인물만 집어넣은 '헤이트풀 8'의 구성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장르는 서부극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추리극에 가깝다. 눈보라 치는 극한의 날씨, 인적이 드문 산장, 한정된 공간에 모인 용의자들, '소년탐정 김전일' 등에서 익히 봤던 인클로즈드 서클의 추리물이다. 168분, 약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타란티노 영화답게 지루함이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버릴 장면 하나 없이 어떻게 파국에 다다를지 계속 궁금하게 한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들로 만드는 서스펜스가 압권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딱 10편의 영화를 만들고 은퇴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해 왔다. '헤이트풀 8'은 영화 제목의 숫자 8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8번째 영화다. 최근작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9번째 영화. 이제 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마지막 1편밖에 안 남았다. 그저 은퇴번복 하고 계속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나온 영화중 타란티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영화 '헤이트풀 8'을 추천한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타란티노 영화 | ||||
추천 포인트 |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입담이 살아있다 못해 숨 쉬는 영화를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타란티노 영화가 취향에 안맞는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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