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4. 14:43ㆍ영화 보는 중
사조삼부곡(소위 영웅문 3부작)으로 유명한 김용의 작품들은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된다. 김용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후반에 다다를수록 최고라고 말한 바 있다.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소오강호'. 한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연걸, 임청하 주연의 '동방불패(1992)'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동방불패는 원작 '소오강호'에 나오는 한 챕터 정도 분량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
의천검과 도룡도라는 무림기보 쟁탈전을 벌였던 '의천도룡기', 구음진경을 둘러싼 비극을 그린 '사조영웅전'. 이번 소오강호의 비극의 씨앗은 '규화보전'이다. 이 규화보전은 김용의 세계관에 나오는 절대무공들 중에서 가장 사악하기로 손꼽힌다. 이유는 남성이 규화보전을 온전히 익히려면 거세해야 하기 때문.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호의 비정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서극, 정소동 감독이 연출한 '소오강호(1990)'는 작중 규화보전의 이런 특별성이 언급되진 않는다.
영화 '소오강호'는 규화보전을 얻기 위해 벌이는 고수들 간의 치열한 쟁탈전을 그린다. 특히 후반부 객잔에서의 규화보전과 소오강호비곡이 적힌 두루마리를 두고 벌이는 액션신은 좁은 공간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영화의 백미 부분. 심각한 상황 속에서 곧 죽어도 농담을 던져야 하고, 재치로서 위기를 넘기며, 의를 행하는 데 있어선 목숨까지 던지는 '영호충'을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 허관걸이 연기했다. 허관걸은 영호충 특유의 능글맞음을 잘 표현했다. 허관걸은 소오강호를 찍고 은퇴를 선언한 덕에, 소오강호의 속편인 '동방불패'에서는 이연걸이 '영호충'역을 맡게 된다. 이연걸의 액션 연기는 일품이지만 영호충의 캐릭터 해석은 허관걸보다 모자라서 그의 너무 빠른 은퇴가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이 영화가 30년이 지나서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화 속 강호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무공을 위해서라면 가족, 연인, 친구, 동료까지 팔아먹으면서 뒤통수치는 강호의 위선자들. 험난한 사회생활에 끊임없이 고통받는 현대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온갖 은원이 서린 강호에서 정파와 사파 구분 없이 우정을 나눴을 뿐인데 죽음을 강요받은 곡양과 유정풍. 죽음을 앞둔 그들의 모든 내공을 실어서 연주한 소오강호곡의 곡조가 참 애달프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영호충에게 그 곡을 후세에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 세상을 떠난다. '비정한 강호에서 한바탕 웃어본다'라는 뜻의 소오강호. 이를 실천하는 영호충과 규화보전을 둘러싼 비극은 속편인 '동방불패(1992)'에서도 이어진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90년대 홍콩 무협 액션 영화 | ||||
추천 포인트 | 김용의 무협 소설 팬인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옛날 영화라서 싫다는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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