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2. 02:41ㆍ영화 보는 중
괴수들에 의해 전 지구가 위기에 봉착했다.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괴수들인 '카이주'들에 맞서기 위해 인류는 거대 로봇인 '예거'를 만들어 대항한다. 성공한 덕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괴수물과 메카물을 오마주해 실사영화 '퍼시픽 림'으로 만들어 2013년에 선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들의 지구 침공. 후레시맨, 바이오맨 등의 전대물, 울트라맨 시리즈, 지구용사 선가드, 우주 용사 다간 등의 용자물 시리즈, 그리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마징가 Z 시리즈까지.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기 전부터 일본 콘텐츠인지 모르고 자란 세대들에게 익숙한 플롯이다. 우리는 그렇게 지구방위대와 괴수들(혹은 외계인) 간의 싸움을 보면서 열광했고, 마블 시리즈의 어벤져스까지 치면 지금까지도 전세대를 아우르며 즐겁게 보는 콘텐츠에 해당된다. 메카물과 괴수물의 덕후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자신에게 영화 제작 권한이 생기자 거대 로봇을 할리우드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실사 영화로 만들었고, 그 결과물이 '퍼시픽 림'으로 탄생했다.
괴수들의 명칭을 '카이주'(괴수의 일본식 발음)로 설정한 것부터가 일본의 숱한 괴수물과 로봇물에 대한 오마주의 시작이다. 사실 '퍼시픽 림' 속 괴수들의 형상도 고지라 시리즈에서 봐왔던 것들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괴수들이 육지로 계속 쳐들어 오는 플롯은 '에반게리온'의 설정과 비슷하다. 영화 속 메인 로봇인 '집시 데인저'는 '철인 28호 FX'의 디자인과 흡사하며,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이 탑승자의 모션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로보트 태권V'가 먼저 연상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런 작품들을 보고 반영했는지 모르지만(특히나 로보트 태권V), 그의 괴수물과 메카물에 대한 사랑이 영화 속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예거'의 사이즈를 매우 크게 설정했는데, 바다를 걸어 다니는데 허리 정도만 잠기며, 유조선을 몽둥이 삼아 들고 카이주를 후려 팬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속 로봇들은 집시 데인저의 발목 위치밖에 오지 않는다. '예거들은 애초에 사이즈가 다르다'라며 무지막지한 크기에서 오는 묵직한 액션 연출이 자주 등장한다. 퍼시픽 림의 후속편인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감독이 바뀌면서 예거들의 사이즈가 작아지고, 움직임이 화려해졌다. 예거들의 무게감이 사라지고 방정맞은 가벼움 덕에 영화의 재미도 가벼워졌다. 업라이징의 흥행실패 덕에 퍼시픽 림의 3편의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스토리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식상하고, 영화의 흐름도 뻔한 영웅 서사이며, 결말마저도 권선징악 류의 '괴수들을 물리쳤다'로 끝이 난다. 퍼시픽 림은 스토리에 방점을 찍은 영화가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로봇물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구현된 실사 영화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거대 로봇과 괴수들 간의 전쟁을 그린 세계관 구현을 잘 해냈으며, 예거와 카이주의 액션을 훌륭히 만들었다. 액션 영화의 액션 연출조차 못하는 영화가 수두룩한데, '퍼시픽 림'은 보여주고자 하는 초점을 잘 짚은 영리한 영화다. 퍼시픽 림 시리즈에 해당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TV 애니메이션 '퍼시픽 림: 어둠의 시간'이 최근 공개됐다. 퍼시픽 림이 보여줬던 장점들이 많이 퇴색됐지만, 영화 속 세계관이 확장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퍼시픽 림'과 '퍼시픽 림: 어둠의 시간'이 시청 가능하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거대 로봇 + 괴수물 | ||||
추천 포인트 | 어린 시절 거대 로봇과 괴수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쯤 상상했던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아무리 액션 영화라고 하더라도 빈약한 스토리를 참을 수 없는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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