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1. 00:02ㆍ영화 보는 중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영혼을 위한 음식, 영화가 고플 때가 있다. 인생의 성공가도에서 단 한 번의 실수로 삐끗할 때.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인생에서, 왜 인지도 모른 채 나락에 떨어질 때. MCU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의 경호원 '해피 호건'이자, 영화 '아이언맨 1, 2'의 감독인 존 파브로의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지친 영혼들을 위한 '쿠바식 샌드위치'를 선사한다.
'시트콤 프렌즈'에서 모니카의 재벌 남자 친구(UFC에 참가해 불구가 된다..), 벤 에플렉 주연의 영화 '데어데블'에서 '포기 넬슨' 변호사 등. TV, 영화에서 조연급으로 꾸준히 연기 경력을 쌓아온 존 파브로. 그는 크리스마스 영화 '엘프'를 성공리에 연출해서 마블 스튜디오의 제작자 케빈 파이기의 눈에 든다. 존 파브로는 당시 문제아 취급받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아이언맨으로 점찍어두고, 마블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 부쳐 로다주를 '토니 스타크'로 캐스팅한다.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DC '그린 랜턴', 톰 크루즈 주연의 유니버설 픽쳐스 '미이라', 빈 디젤 주연의 소니-밸리언트 '블러드샷'. 모두 창대한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타자들이고, 장렬하게 망하거나 애매하게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하나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데 있어 그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존 파브로 감독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번째 작품인 영화 '아이언맨'을 성공리에 만들어 흥행+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챙긴다. MCU가 얼마나 잘 됐는지는 모두가 다 알듯, 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는 아이언맨 2까지 연출을 맡았고, 당시 마블 엔터테인먼트 회장 '아이작 펄머터'의 간섭에 질려 이후의 작품에서는 손을 뗀다. 하지만 시리즈의 애정은 남았는지 1편부터 출연했던 '해피 호건'역에는 '아이언맨 3', '스파이더맨 홈커밍',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 꽤 비중 있게 출연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연 감독이니 마블 내에서의 대우가 남다르긴 했을 듯) 그리고 디즈니 실사 영화 시리즈인 '정글북', '라이온 킹'을 연출해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인 감독으로 안착했다. 최근 디즈니+의 TV시리즈 '만달로리안'의 총제작을 맡은 건 덤. 이런 그의 이력 덕에 '아메리칸 셰프'의 출연진들이 남다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더스틴 호프먼까지. 카메오 수준의 조연급에 초호화 캐스팅을 해버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의외의 장면에서 배우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먹고살기 바빠 자신에게 소홀해지고, 잘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행복해하던 것이 무엇인가 돌이켜보고 싶을 때.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그지점에 집중한다. SNS의 개념을 몰라 일순간에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해진 셰프 '칼 캐스퍼(존 파브로 분)'. 재취업도 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자신의 전처 '이네즈(소피아 베르가라 분, '모던 패밀리'의 '똑뚜미 여사'로 유명하다)'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지 말고 푸드 트럭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메뉴는 그가 잘하고 좋아하는 '쿠바식 샌드위치'. 그래서 전 레스토랑의 동료 '마틴(존 레귀자모 분)', 아들과 함께 뉴올리언스-텍사스-LA를 푸드트럭으로 여행하며 쿠바 샌드위치 장사를 시작한다.
사실 '아메리카 셰프'에서 보여주는 존 파브로의 연기는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오랜 경력 탓에 어색하진 않지만, 다른 주연 배우급만큼의 절륜의 연기실력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연출이나 스토리가 엄청 뛰어나지도 않다. 실패한 셰프의 소주 병나발, 부자지간의 신파, 이혼한 전처와의 불화, 그리고 푸드 트럭을 얻는 과정에서의 사기, 빚더미에 앉아 사채업자, 조폭들에 쫓기는 등. 한국영화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곁가지 플롯들을 '아메리칸 셰프'의 존 파브로는 일향 사양한다. 그저 음식과 여행이라는 두 가지 테마만 잡고, 필요한 연기, 연출만을 선보인다. 이런 군더더기 없는 솔직함이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영화들을 꾸준히 만든 감독의 실력 탓에, 아메리칸 셰프는 편하고 재밌게 볼 수 있다. 특히 배고플 때 보면 위험하다. 명색에 음식 영화라고 요리하는 과정을 맛있게 잘 찍었다. 주요 소재인 쿠바식 샌드위치는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생경한 탓에 음식점을 주변에서 찾는 게 쉽지 않다. 무겁지 않고 긍정적인 캐릭터들 덕에 영화는 끝까지 유쾌함을 유지한다. 가볍게 먹는 쿠바식 샌드위치처럼, 별생각 없이 접했다가 영화가 끝날 때쯤 묘한 행복감에 휩싸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음식을 소재로하는 힐링 영화 | ||||
추천 포인트 | 보고나면 행복감이 느껴지는 영활를 찾는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야밤에 빈 속인 상태로, 볼만 한 영화를 찾는 분들에게 비추천 |
PS. 한국계 셰프인 '로이 최'가 영화의 음식부문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그래서 소스 재료로 '고추장'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에도 촬영장에서 '커피차'가 유행이듯) '아이언맨 2' 촬영 시 기네스 펠트로가 LA에서 유명한 한국식 바비큐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로이 최'를 불렀고, 그때 존 파브로 감독이 눈여겨봤다고 한다. 아메리칸 셰프가 인연이 돼서 존 파브로+로이 최는 넷플릭스 '더 셰프 쇼'를 런칭한다. 출연진들은 또 존 파브로의 인맥자랑(케빈 파이기, 톰 홀랜드, 로다주, 기네스 펠트로, 루소 형제 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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