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9. 20:00ㆍ영화 보는 중
존 프레스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더 디그'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새롭게 공개됐다. 영화 '더 디그'는 [영국 서퍽 지방의 '이디스 프레티' 여사가 발굴가인 '배질 브라운'에게 유물 발굴을 의뢰한다.]라는 비교적 간단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 '도굴', 할리우드의 '인디아나 존스', '툼레이더' 등을 보면 고대 유물을 탐험하는 행위를 어드벤처에 초점을 맞춰서 영화로 만들어 왔다. 사실 라라 크로프트나 인디아나 존스의 영화 내 행적을 보면 발굴보다는 도굴꾼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영화 '더 디그'는 도굴 행위가 아니라 철저히 고증에 맞춘 듯 한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상술한 영화들의 모험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이며, 독일과의 세계 2차 대전 전면전을 앞둔 얼마 안 된 시기로 보인다. 그래서 전쟁의 암운이 영화 곳곳에 드리우고 있으며, 이디스 프레티 여사(캐리 멀리건 분)의 남편은 이미 전사한 걸로 보인다. 발굴 과정에서 사진 촬영 역할을 맡은 사촌동생은 작업 중에 군대 영장이 날아오는 상황이다. 프레티 여사의 건강은 몹시 안 좋아 사실상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녀의 얼마 안 남은 인생의 마지막 장에 발굴가 배질 브라운과 함께 유적 발굴에 마지막 힘을 쏟아붓고 있다.
배질 브라운(랄프 파인즈 분)은 저명한 고고학자도 아닌 그냥 오랜 경력의 삽질 전문가에 불과하다. 발굴 현장을 전전해서 여럿 다닌 덕에 그 누구보다 발굴에 대한 실력은 뛰어나지만 짧은 가방끈과 노동자라는 이미지 덕에 그는 무명에 가깝다. 이디스 프레티는 그런 배질 브라운에게 믿음과 힘을 실어주며 발굴작업을 응원한다. 바이킹보다 전의 시대인 6세기 앵글로 색슨의 시대의 유물을 첫 발견함으로써 프레티의 발굴은 영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리고 대영박물관에서도 주목해 그들의 발굴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 '더 디그'에 캐리 멀리건, 랄프 파인즈, 릴리 제임스 등 연기 좀 하고, 유명한 영국 배우들이 참여한 덕에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보는 맛이 있다. 볼드모트로 유명한 랄프 파인즈 배우의 연기는 특히나 뛰어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 중반부쯤부터는 랄프 파인즈의 출연 빈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던 텐션이 아예 소멸한다. 영상미나 편집, 음악 등이 우아하고 유려하며 자연스러워서 영국 시골 특유의 풍경을 보는 맛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의 장점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유물 발굴이란 게 상술했듯 그렇게 멋있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은 작업이다. 영화 제목부터가 사실 '발굴'인 이 영화는 나름의 갈등 요소를 포진해 두긴 했지만, 이를 잘 써먹지도 못한다. 이름 없는 실력 있는 발굴가인 배질 브라운과 대영 박물관과의 갈등, 부장품을 두고 누구의 소유인지의 갈등, 사실상 불륜에 가까운 유일한 로맨스 등 그 무엇 하나 긴장감을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카라 무덤의 비밀' 처럼 발굴 과정을 처음부터 잘 그린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도 아니다. 무언가 서사를 부여하고 열심히 극 영화로 만든 티는 나지만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하나도 와 닿지 못한다. 이는 명백히 연출이 부실한 탓이다. 이름 있는 배우들, 괜찮은 소재, 제작비가 어느 정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20세기 사극 이란 점에서 흥미를 끌만한 요소는 많지만 감독은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다.
그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은 중반부까지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여해 볼거리를 자랑하고 후반부 들어 급격히 떨어지는 용두사미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 이번 영화 '더 디그'는 제작비를 배우 캐스팅에 다 쓴 것 같은 모양새가 전부다. 용두사미 조차 되지 못한 '더 디그'는 그렇게 또 '넷플릭스가 넷플릭스 한' 영화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재밌냐? | YES | NOT BAD | SO-SO | NOT GOOD | NO |
'재미'의 종류 | 유적 발굴에 얽힌 이야기 | ||||
추천 포인트 | '전쟁의 암운을 뚫고 고대 유물을 발굴하는 위인들'의 모습을 보고싶은 분들에게 추천 | ||||
비추 포인트 | 잔잔한 감동의 휴먼 드라마를 기대한 분들에게 비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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