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 후기: 퇴마물로 해석한 서유기 프리퀄

2021. 2. 18. 00:02영화 보는 중

포스팅의 제목이 '주성치 영화'지만 포스터에서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 주성치 없는 주성치 영화기 때문이다. 주성치 감독의 연출작 영화' 서유기: 모험의 시작(이하 서유항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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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운틴픽쳐스, ㈜영화사민들레,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스틸컷

주성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중국 영화 중 '서유쌍기(월광보합+선리기연)' 2부작을 명작으로 꼽는데 이견이 없을 거다. 동굴에서 '뽀로뽀로미'를 외치며 타임슬립을 하고, '사랑의 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라며 천연덕스럽게 중경삼림을 패러디했던 그 작품이다. 서유쌍기 2부작을 기억한다면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이하 서유항마)' 이 반가울 수 있다. 서유쌍기는 주성치가 주연으로 나왔지만 연출작은 아니며, 서유항마는 그가 출연하진 않았지만 주성치 감독의 연출작이다.

 

한중일 3국은 서유기라는 작품에 친숙하다.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는 한국에서는 '날아라 슈퍼보드', 일본에서는 '드래곤볼' 등으로 다양하게 사랑을 받아온 고대 소설이다. 상술한 서유쌍기에서는 시간을 초월하는 번뇌와 사랑의 감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했다면, 서유항마는 서유쌍기만큼의 깊이는 없지만 퇴마물로서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사실 서유기를 소설책으로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가 아는 슈퍼보드의 '미스터 손+관종 저팔계+귀머거리 사오정' 같은 코믹하고 히어로다운 모습은 소설 초반부에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괴상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고, 삼장법사를 만나서 서역으로 여행하기 전까지 인근 주민들을 괴롭히던 요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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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운틴픽쳐스, ㈜영화사민들레,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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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운틴픽쳐스, ㈜영화사민들레,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스틸컷

서유항마는 퇴마사 '진현장'을 필두로 그가 어떻게 서유기 주인공 일행을 만나게 되는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상 서유기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주성치의 영화들처럼 유치하고 코믹한 영화를 기대하고 틀었다면 초반 15분 동안 당황할 수 있다. 주성치 감독은 물의 요괴 시퀀스에서 '죠스'나 '피라냐' 같은 웬만한 할리우드 재난영화가 떠오를 정도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아이만큼은 꼭 살린다'라는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클리셰를 비틀고, 어촌마을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아크로바틱 액션까지 보여주는 영리한 연출이 돋보인다. 중반부의 저팔계 시퀀스에서는, 돼지 얼굴을 한 요괴가 얼마나 무섭고 징그러울 수 있는지 괴성 한 번에 간담을 서늘케 한다. 

 

서유쌍기처럼 서유항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주성치가 그간 영화에서 다뤄왔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특유의 휴머니즘과 결합해서 결말부에 심금을 울리는 특징이 있다. 선리기연에서 긴고아(손오공 머리에 쓰는 황금테)를 쓰면서 하는 명대사는 다시 봐도 찡한 게 있다.

진정한 사랑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난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그리고 그걸 잃고 나서야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만약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사랑한다 말하겠소. 기한을 정하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겠소.                          - 서유기 선리기연 中에서 -

이번 서유항마에는 위의 말에 화답하는 듯한 대사가 나온다. 어떤 말인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포스팅에 쓰지 않겠다. '하늘의 별도 따주겠다'처럼 연인들 간에 흔하게 할 수 있는 대사지만, 가슴 아프게 비수 꽂는 연출은 주성치 영화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의식은 서유쌍기가 제일 연상되지만,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쿵푸허슬'과 제일 닮았다. 요괴와 퇴마사간의 결투가 쿵푸허슬처럼 층층이 쌓이는 방식으로 종반부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쿵푸허슬의 여래신장처럼,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을 보여주는데, 영화 '아마겟돈'과 '킹콩', '드래곤볼' 등을 패러디한 듯한 주성치만 할 수 있는 뻥이 펼쳐진다. 소림축구부터 보여준 그의 영화적 상상력을 실현해주는 CG의 사용이 서유항마에도 많다. 최근 작품인 '미인어'보다는 상대적으로 다듬어진 편이어서 CG가 화면에서 그렇게까지 위화감이 들진 않는다. 주성치 특유의 B급 유머가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서 그만의 코미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연출 능력이 이 정도까지 되는구나 싶은 작품임은 분명하며, 끝까지 다 보고 나면 영화에서 그를 못 봤지만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재밌냐? YES NOT BAD SO-SO NOT GOOD NO
'재미'의 종류 주성치 영화
추천 포인트 '쿵푸 허슬'에서 느꼈던 주성치의 연출력을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비추 포인트 주성치표 코미디 영화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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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운틴픽쳐스, ㈜영화사민들레, 영화 '서유기 : 모험의 시작'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