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A '귀멸의 칼날 1기' 후기: 소년만화의 정석

2021. 1. 21. 01:04TV 보는 중

바야흐로 귀멸의 칼날이 일본 열도에서 인기다.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같은 소년만화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만화가 나왔다고는 들었지만 최근 극장판 '무한열차 편'의 경이로운 일본 내 신기록 덕에 '귀멸의 칼날'의 위상이 남다르다고 한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프리미어 시사회 명목으로 최근 국내 극장에 공개됐으며, 다가오는 1월 27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애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후기

 

애니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후기

일본에서 개봉 이후 자국 내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여전히 흥행 중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하 무한열차편)'이 국내에도 개봉했다. 애니메이션이 약세인 국내 극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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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맥스코리아, TVA '귀멸의 칼날' 스틸컷

드래곤볼, 슬램덩크에 이어서 최근 원나블의 전성기를 지나 일본 소년만화가 조금 기울던 중에 그 계보를 새롭게 잇는 작품이 최근 화제였다. 원피스-나루토-블리치 삼두마차 중 나루토, 블리치는 완결이 났고, 원피스는 완결 타이밍을 한참 놓쳐서 그 흥행세가 예전만큼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귀멸의 칼날은 원피스의 단행본 판매량(누적이 아닌 '월'기준)마저 제쳤다는 기사도 나왔었다. 지금도 원피스와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최근 단행본 판매량 1억 부 클럽까지 가입했다고 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TV 애니메이션 시장이 굉장히 큰데,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만화책 홍보 목적이 강하다. 단행본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출판사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함께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방영한다. '책'이라는 매체보다는 틀면 나오는 TV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한국도 영화화가 된 원작 소설을 찾아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귀멸의 칼날은 'ufotable(유포테이블)'에서 제작했으며, 퀄리티 높은 TVA의 인기로 단행본 판매량이 치솟은 케이스에 속한다.

 

애니맥스코리아, TVA '귀멸의 칼날' 스틸컷

 

'귀멸의 칼날'은 원작의 탄탄함은 물론, 귀살대 vs 혈귀라는 특성상 액션신이 중요한 작품이다. 귀멸의 칼날 TVA에서 유포테이블은 셀 애니메이션 위에 CG를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연출이 눈의 띈다. 귀멸의 칼날의 액션을 정확히 살리면서 원작의 너무 빠른 속도감을 서사로 채우는 등의 노력으로 원작 초월의 TVA가 나와버렸다.

 

귀멸의 칼날은 국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시대 배경과 귀걸이다. 귀멸의 칼날은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반도 기준으로 조선이 망하고 일제 치하의 시대 한복판이었던 1912 ~ 1926년이다. 대한제국은 1910년에 한일합방을 겪으며 역사에서 사라졌고, 일본제국 휘하에 식민지가 되었다. 총독부의 통치를 받았으며 무자비한 일본 헌병들에 의해 모두가 괴로웠던 시기다. 특히 다이쇼 시대의 한가운데쯤 되는 1919년에는 3.1 운동이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시작되기도 했다. 귀멸의 칼날 측은 우리에게 가슴 아픈 시대를 왜 하필 골랐을까. 

 

애니맥스코리아, TVA '귀멸의 칼날' 스틸컷

 

다이쇼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시대나 배경을 알고 보더라도, 작품 속에서 그 흔적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그냥 만화만 본다면 이게 '다이쇼 시대'인지 아님 '바람의 검심' 속 메이지 시대인지 구분이 안 간다. 다이쇼 시대라면 상술한 헌병, 일제의 군인들, 식민지 통치 등의 군국주의의 바람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되려 귀멸의 칼날 속 세계관에는 정부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을 잡아먹는 '혈귀'라는 존재들이 버젓이 활보하는데 이를 잡으려는 경찰이나 정부 측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작중 사람들이 죽고 사라지지만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으려는 순경조차 나오지 않는다. 되려 혈귀를 잡으려고 민간 집단인 '귀살대'는 정부의 눈을 피해 활동한다. 이런 혈귀들이 활동한 게 벌써 1000년이나 됐다고 하니, 백제 왕인박사가 가르친 쇼토쿠 태자 시대도 저렇게 무능하진 않았을 거다. 사실상 무정부 시대나 다름이 없다. 다이쇼 시대의 군국주의를 옹호한다기보다는 그냥 은근슬쩍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고도의 까'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 왜 굳이 다이쇼 시대로 했을까. 별생각 없이 '그냥'이라는 무개념이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사극이긴 한데 의상을 기모노만 입히는 게 아니라 가쿠란(예: 슬램덩크 강백호의 교복)을 귀살대에 입혀보고 싶고, 메이지 시대를 하자니 '바람의 검심'이 먼저 해버렸고. 이런 이유가 아니고서야 다이쇼 시대에 대한 자료조사도 부족해 보이고, 굳이 그 시대로 한 이유도 작품 속에서 딱히 느껴지지도 않는다.

 

애니맥스코리아, TVA '귀멸의 칼날' 스틸컷

 

다른 하나는 귀걸이 문양이 욱일기라는 점. 욱일기 문양의 역사를 잘 모르는 서구권에서는 일종의 디자인 패턴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는 분명 잘못된 점이다. 디자인이 멋지다고 독일 나치의 '하이켄 크로이츠' 쓰지 않듯이 정부+민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이런 한국 정서를 의식해서인지, 아님 어떻게든 한국에서 팔아먹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한국 내 방영한 TVA에는 욱일기 문양이 아닌 '화투패'스타일로 단순화된 귀걸이 디자인이 나온다. 이는 극장판 '무한열차 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무를 해 숯으로 만들어 산아래 마을에 파는 숯쟁이 '탄지로'네. 눈이 많이 오던 겨울날, 숯을 팔러 나갔다 온 사이 가족들(어머니+동생 4)이 말 그대로 끔살을 당한다. 그저 가족끼리 화목하게 오손도손 잘 살았을 뿐인데, 혈귀 '무잔'이 다녀가서 모두 죽었다. 겨우 숨만 붙은 여동생을 구하러 의원을 찾지만 그녀는 무슨 연유인지 '혈귀'로 변했다. 우리의 주인공 탄지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하나 남은 여동생은 혈귀로 변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애니 속 정서는 기본적으로 슬프고, 세상은 탄지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혈통이 좋아 대우받는다던가, 타고난 천재여서 빨리 배운다던가 하는 소년만화의 클리셰들이 탄지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평범한 숯쟁이일 뿐이고, 왜인지도 모른 채 가족을 잃었다. 

 

애니맥스코리아, TVA '귀멸의 칼날' 스틸컷

 

일본 소년만화들이 그렇듯이, 주인공 탄지로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맘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가 견뎌내기엔 너무 가혹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래서 탄지로가 더 잘 됐으면, 그가 빨리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TVA 1기는 전반적으로 그 작화 퀄리티가 매우 높고, 액션신을 그릴 때 카메라 워크가 매우 화려하다. 특히 상술했듯 CG인 게 분명 보이지만 위화감 없이 액션 장면에 녹여낸 연출이 매우 훌륭하다. 특히 19화는 원작 작가가 감명 깊게 보고 울기까지 했다는데, 과연 그럴만했겠다 싶었다. 탄지로의 가족의 사연과, 혈귀와의 결투를 OST와 함께 절명의 연출을 선보인다. 

애니맥스코리아, TVA '귀멸의 칼날' 스틸컷

 

상술한 19화 이후부터는 약간 쉬어가는 구간처럼 텐션이 급격히 떨어진다. 혈귀와의 혈투는 잠시 접어두고 주인공 탄지로 일행의 수련(레벨업) 구간이 온다. 그리고 후속편 격인 '무한열차 편'의 떡밥을 계속 던진다. 현재 완결까지 나온 원작 기준으로 봤을 때 귀멸의 칼날의 진짜 재미는 무한열차부터 라고 한다. 한마디로 TVA 1기는 가장 재미가 떨어지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재밌다니..) 무한열차 편부터 무잔과의 최종 결투는 엄청난 전개 속도와 재미를 보장한다고 한다. 

 

혈귀는 낮의 해를 피해 밤에만 돌아다니고, 괴력과 특수기술들을 사용한다. 사람을 잡아먹고, 힐링팩터 같은 회복력이 있어 목을 쳐야만 무찌를 수 있다. 이 특성들을 보면 흡사 뱀파이어와 좀비를 한데 섞어 놓은 듯하다. 거기에 귀살대라는 조직과 전집중호흡 등은 소년만화 좀 봤다면 익숙한 설정과 단체들이다. 바람의 검심, 원나블 같은 만화를 즐겨 봤다면 '귀멸의 칼날'은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한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재밌냐? YES NOT BAD SO-SO NOT GOOD NO
'재미'의 종류 일본 소년 만화
추천 포인트 일본 정통 복장이 나오는 작품에 거부감이 없는 분들에게 추천
비추 포인트 다이쇼 시대, 귀걸이 문양등의 한일 문제를 못 견딜 것 같은 분들에게 비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