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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카이로스' 후기: 과대 포장된 질소 과자

망고소다 2021. 3. 18. 00:02

카이로스.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뜻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기회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이 지나가는 1분이, 다른 누군가에겐 운명을 바꾸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매일 밤 10시 33분. 휴대폰을 통해 한 달 뒤의 사람과 딱 1분 동안만 통화가 가능하다. 이 1분으로 유괴당한 딸을 구하고  소중한 가족을 되찾고, 생명을 구하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 2020년 하반기에 방영한 MBC 드라마 '카이로스'는 타임슬립 장르물로서,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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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카이로스' 포스터

드라마 '카이로스'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이 가능하다. 1~7화에 해당하는 전반부는 유괴,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본격 타임슬립 물을 표방한다. 드라마는 굵직한 두 가지 사건을 놓고 앞뒤 안 보고 달리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한 달 전 과거가 바뀌면 한 달 후 미래가 바뀌는 단일 우주를 배경으로 '카이로스'는 드라마틱한 전개가 펼쳐진다. 특히 매 화 오프닝과 엔딩에는 의도적으로 충격적인 전개를 배치해서 떡밥을 꾸준히 투척하는 성실함을 보여준다.

 

문제는 후반부(8~16화)에 해당하는 8화부터 전반부의 미덕이 찾기 힘들다는 점. 전반부도 사실 오프닝과 엔딩 사이에는 다소 전개가 늘어졌는데, 후반부 들어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여러 가지 장르를 한데 섞었는데 어디서 본듯한 작품들이 많이 떠오른다.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인물들을 연결해주는 '시크릿 가든', 자신을 버리고 새신분으로 사는 '화차', 과거와 미래의 인물이 사건 해결을 위해 공조하는 점은 '시그널', 그리고 건설사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흔한 사회고발 물 등이 떠오른다. 다른 작품들이 연상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여러 작품들의 좋은 점 만 따와서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든다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카이로스'는 뒤섞이면서 혼합이 잘 안됐다는 게 아쉬울 뿐.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 정도로 작중 인물들의 설정이나 사건들이 작위적인 것들이 많이 발견된다. 오죽하면 극 중 검사도 '그냥 이혼을 하지 그러셨어요?'라고 묻는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드라마는 끝이 났다. 악의 세력에 대한 묘사도 모자라서 극 중 인물들이 왜 그렇게 까지 두려워하고 피해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단역인 줄 알고 발연기에도 참고 견뎠던 이택규(조동인 분)는 결국 끝까지 나오는 중요한 역이었다. 극 전체의 악역의 아우라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발성부터가 잘못돼서 대사 전달조차 하지 못한다. 작중 인물들이 계속 두려워하는 흑막의 실체는 생각보다 싱거웠고, 정체를 드러낸 이후의 무게감마저 한없이 가벼웠다. 악의 세력을 묘사하는 연출력의 부재인 탓이 크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평균 3~4% 정도. 숨겨진 걸작이라는 입소문과 신뢰하는 왓챠의 예상 별점(4.0)을 믿고 드라마를 시작했다. 후반부에 흐지부지되는 연출과 스토리 전개, 그나마 볼만하던 전반부도 오프닝과 엔딩의 충격적 떡밥 정도만 제외하면 과연 이 드라마가 '걸작'이라는 명칭에 어울릴 만 한지 잘 모르겠다. 기대하고 열었는데 질소만 가득한 과대 포장된 과자를 먹은 느낌이랄까. 1화 기준 1시간 분량의 총 16부작이다. 작중 1분을 소중하게 다뤘던 것처럼 누군가의 장장 16시간도 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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